[R]모슈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E장조 - 피어스 레인 :: 2011. 4. 13. 22:45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곡이든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사람들은 그래도 그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도 스스로가 느끼기에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곤 합니다. 자주 듣는 음악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비평을 쓰는 것도 그렇고, 예술과 관련된 우리의 많은 행위들은 대개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적' 취향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셀 수 없이 많을 기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건의 하나는 아마도 '특이성'일 것입니다. 늘 보던 잎새들의 뒷면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프로이센의 브레슬라우(Breslau, 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Wrocław) 에서 태어난 모리츠 모슈코프스키(Moritz Moszkowski, 1854-1925)는, 다른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그 덕에 11살에 이미 드레스덴 음악원에 입학했고, 이후 베를린에서 수학했는데 이때의 스승이 체르니의 제자인 테오도르 쿨락(Theodor Kullak)이었고, 이 시절 만나 평생 교유한 동문이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크사버 샤르벤카(Xaver Scharwenka)입니다.

 

빈한하고 비참했던 그의 말년이 연상될 만큼, 그에게 쏟아지는 비평의 대부분은 혹평 일색입니다. '전혀 새롭지 못하다'거나, '창의성이 떨어진다'거나, '세련된 살롱 음악에 불과하다'는 의견들이 쏟아져 왔지요. 오늘 소개하는 피아노 협주곡 역시 완성도가 크게 높다거나 새로운 양식을 선보이지는 못합니다. 스승인 쿨락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복잡하고 세련됐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운 짤랑거리는 계단식 선율에, 화려하고 멜로딕한 전개는 이미 한두 세대 이전의 헤르츠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중기 낭만주의 협주곡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각 악장 간의 주제가 큰 연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곡의 흐름 역시 일관되지 못한 점 또한 부정할 수 없지요. 특히나 3악장의 종지는, 4악장이 사족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여기서 끝!'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그나마 3악장은 2악장과 묶여 있는 데다 종지부로의 전개가 하도 급해서 마지막 악장으로 보기도 애매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곡을 사랑하는 것은, 넘치는 음표들로 숨이 막힐 것 같은 낭만시대의 거대하고 복잡한 피아노 협주곡들 사이에서, 등잔불처럼 가만히 빛을 발하는 2악장 때문입니다.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고 조심스러운 피치카토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영역을 넓히며 단비처럼 내리는 멜로디는 그 어느 협주곡의 2악장과 비교해도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습니다. 공간을 음표로 꽉꽉 채워 자신을 표현했던 동시대의 작곡가들과 달리, 모슈코프스키는 어쩌면 여백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아름다운 피아니시모를 무리하게 발전시켰다거나, 그냥 평범한 서주로 활용했다면 2악장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는 평범한 협주곡의 한 악장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슈코프스키는 현명하게도 단 한 번씩의 포르티시모와 포르테와 메조포르테만을 등장시키고, 이외에는 여지없이 여린 세기를 고집했습니다. 수줍게 자리를 바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발걸음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사라지듯이 악장이 끝나버리지요.

피어스 레인은 정말 훌륭한 2악장을 만들어냈습니다.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터치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면서도, 포르테에서의 상대적인 강세를 아무런 무리없이 표현합니다. 피아니시모에서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울림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음과 음 사이에서 충분한 여유를 둔 점이 인상에 매우 깊게 남습니다. 지휘자 예르지 막시미우크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아주 좋습니다. 조심조심 움직이는 피아노를 묻어버리지 않으려면 마찬가지로 숨을 죽이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필수적인데, 이 점을 아주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슬그머니 옆자리에 와서 앉는 수줍은 오보에, 더없이 세련된 현악기의 피치카토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다른 악장에서도 이들은 아주 좋은 호흡을 보여줍니다. 특히 3악장에서 피아노의 뒤를 받치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클라리넷처럼, 곡의 도처에 숨어 있는 장치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감상의 즐거움을 충분히 배가시켜줍니다.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즐겁게, 재치있게 표현하면서도, 이 곡에서 가장 중요한 멜로디 역시 매우 아름답게 연주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네요.

모슈코프스키의 말년은 매우 불행했습니다. 아내와 딸과 아들을 잃고(아내는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리고, 아들은 전사했다고 합니다), 이 곡을 작곡한 10년 뒤부터는 당시의 음악경향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교편도 놓고 아예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작곡한 곡들의 저작권을 팔아 생애 처음으로 큰 돈을 만졌지만,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에 투자했다가 때마침 터진 1차 세계대전 탓에 모든 돈을 잃게 되었죠. 그와 친교가 있던 빌헬름 박하우스 등의 연주자들이 모금공연을 열어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쓸쓸함과 절망 속에 홀로 마지막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선배들이 만든 음악을 고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창의적인 신진 작곡가들을 비판했던 모슈코프스키는 어찌보면 고루한 전통주의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곡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즐거움', 그리고 완전히 새롭지는 않더라도(이 곡은 음악사에서 그리 많지 않은 E장조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입니다) 정해놓은 틀 안에서 보여준, 그간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름다움만으로도, 모슈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무수한 낭만시대 협주곡들 가운데에서 잔잔히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