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드보르작 첼로협주곡 / 브람스 교향곡 2번 - 고티에 카퓌송 + 서울시향 :: 2011. 4. 12. 22:19


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우는 것[哭],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것[泣], 눈물 없이 소리로만 우는 것[嘑]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슬픈 것은 ‘읍(泣)’이다. 감정을 삭이고 드러내지 않을 때 오히려 그 공명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수한 감정들을 숨기고 또 숨겨 더 큰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것은 많은 작곡가들이 고민한 숙제였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의 시작은 매우 느렸다. 침착한 전개였으나 느린 템포를 메우기에는 전체적인 소리가 뭉툭하고 빈틈이 많았던 탓에, 1악장 초반의 웅대한 총주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더욱 더 느리게 등장한 고티에 카퓌송의 솔로는 ‘느끼하다’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음색과, 한없이 흐느적거리고 늘어지는 템포 탓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카퓌송이 표현한 단 두 가지 감정-과장된 애수와 과장된 절제-의 부피는 다양한 악상이 들어서야 할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 이 아름다운 곡을 단순한 음표의 나열로 만들었다. 곡의 흐름을 지나치게 독주자에게 맡기며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함께 늘어져버린 에이빈 오들란과 서울시향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렵다.

한쪽엔 홍수가 나고 다른 쪽엔 가뭄이 든 망향의 강은 2, 3악장에서도 이어졌다. 절절하다면 절절한 음색으로 짙은 애수를 표현해낸 것은 좋았으나, 수많은 악상과 영감으로 쓰여진 이 곡을 채우는 감정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다. 향수병에 걸려 죽을 것처럼 흐느끼는 음색은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소리로만 울부짖는 거짓 울음[嘑]과 같아 오히려 거부감만 키웠고, 보잉마저 심하게 분절되며 이 비극적인 신파에 오로지 비탄만을 더했다. 그나마 칭찬할 부분은 3악장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솔로와의 아름다운 2중주가 유일했다. 카퓌송은 연주 내내 나르키소스의 샘물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그 동안 서울시향은 스스로의 꼬여버린 걸음걸이에 신경 쓰느라 독주자를 건져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특히 도처에서 삐걱대는 앙상블과 너무 가볍고 확실하지 못한 팀파니 소리는 연주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모두 합치면 10분은 됐을 열광적인 커튼콜이 의아할 지경이었으나, 두 곡의 후식(포레 : 꿈을 꾼 후에 / 프로코피예프 : 어린이를 위한 음악 中 ‘행진’)이 메인요리보다 맛깔스러웠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향을 그리다 바다에 빠져 죽은 드보르작에 비하면,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은 양호했다. 1악장의 첫 주제(D-C#-D)와, 첼로를 위해 쓰여진 것이나 다름없는 두 번째 주제에서 보여준 저음현악기의 진득하고 농밀한 질감은, 단순하지만 무수한 악상들로 이루어진 대지와 능선을 아련하게, 또 충실히 구현해냈다. 아마도 세밀한 악상을 표현하기 위해 지휘봉을 내려놓은 오들란은 침착하고 절제된 전개를 통해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산맥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2악장과 3악장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동물들과 나무들과 바람의 묘사 역시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전체적으로 산맥을 오르는 듯한 4악장까지의 진행 역시 무난했다. 다만 이제까지 올라온 산맥의 정상에서 산기슭까지 말을 타고 내닫는 4악장의 종결부에서조차 절제하는 모습으로 일관하며, 무대를 가득 메운 긴장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곡을 끝낸 점은 크게 아쉬웠다. 좀처럼 빈틈이 메워지지 않는 앙상블 역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독주자에게 주도권이 있는 협주곡이야 그렇다 쳐도, 그와 상관없는 교향곡에서까지 관과 현의 호흡이 눈에 띄게 엉성했다는 점에서, 연습량 미달이나 지휘자의 능력부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꽤 좋은 음색을 냈고, 각 파트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더 좋은 모습이 기대된다.

감정을 자제하며 작곡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취향과 감정에 충실한 연주를 할 것인가? 이 날의 1부와 2부는 바로 이 대척점에 서 있었다. 하나만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어느 쪽에서라도 훌륭한 연주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한 알의 진주는 물고기 눈 속에 숨기고, 술에 취한 이는 매화 향기를 알지 못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