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정기연주회 :: 2013. 6. 6. 18:28

 

 

 

야구선수 류현진이 뛰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의 LA 다저스는 올해 2억 2천만 달러(한화 약 2,500억원)를 선수들의 연봉으로 지급하며 30개 팀 중 총 연봉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애드리안 곤잘레스, 맷 켐프, 헨리 라미레스 같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그야말로 입이 벌어지는 연봉을 지급하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천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LA 다저스는 지금 5할도 안 되는 승률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꼴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LA 다저스의 부진은 팀 전체의 응집력과 화합을 의미하는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지만, '흐름'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터져줄 때 터지지 않고, 막아야 할 곳을 막지 못해 상대팀에게 경기를 내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은 분명 이들의 팀웍이 아직까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음악에서의 팀 케미스트리 역시 야구 이상으로 중요한, 아니 필수적인 가치입니다. 몇 명이 되었든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필요한 음정과 음색을 내주지 못한다면 그 팀의 음악은 이미 목표로 하는 소리와 해석에서 한참 벗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온갖 객관적인 데이터로 수치화되는 야구에서조차도 화학적 결합이 중시되는데, 관객의 귀만이 유일한 평가지표인 음악에서 팀 케미스트리의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실내악 연주의 경우 이러한 팀웍의 가치는 더욱 더 중요해집니다. 기본적으로 '리더'와 '팔로워'의 구조를 띠고 있어 각자의 위치와 책임 소재가 어느 정도 명확한 오케스트라와 달리, 실내악, 특히 현악 사중주의 경우에는 그 역할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가장 노출이 많은 1바이올린이 리더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주자들이 그 지시를 받는 '팔로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원전연주 1세대인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은 리더인 라인하르트 괴벨의 음악적 지분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좋지 못한 평을 얻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현악 사중주에서는 단 네 대의 악기가 쉴 새 없이 각자의 공간을 충실하게 채우며 균형잡힌 우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중주단은 다른 어떤 편성보다도 '팀'의 목표와 호흡이 중요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독주자로서의 영역과 명성을 구축하고 있는 네 연주자가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을 만들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부분은 바로 위에서 말한 팀 케미스트리였습니다. 자존심 강한 음악인들, 그것도 남부러울 것 없을 만큼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는 독주자들이 얼마나 서로의 음악에 각자의 예봉을 꺾어 맞춰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죠. 각종 축제나 초청 연주를 제외하면 자신들만의 연주로는 두 번째로 꾸며진 이번 정기 연주회(2013. 6. 4, 세종체임버홀)는, 그런 점에서 이 팀의 미래에 아주 중요한 기점이 될 만한 무대였습니다.

 

첫 곡이 하이든의 '기사(no.39 op.74-3)'라는 점은 약간 의외였습니다. 각자의 스케줄로 인해 맞춰볼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치밀한 연주를 요하는 이 곡은 다소 위험한 선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상대로, 1악장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총주 부분에서 계속해서 음정이 맞지 않으며, 첫 연주회에서와 같이 연주 초반에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다만 개인 기량으로 이 불안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는 점과, 1바이올린인 권혁주의 리딩이 첫 번째 연주 때와는 달리 지나치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악장에서는 첼로의 음정이 상당히 틀어지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단순히 음정을 틀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 늘어지는 소리가 났으며, 운지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둥대는 것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1바이올린 역시 계속해서 음정이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는데, 특히나 첼로는 아예 음색 자체가 겉돌고 보잉이나 핑거링에서 계속해서 자잘한 실수를 보였습니다. 그나마 2바이올린의 장유진과 비올라의 이한나가 아주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주며 이를 만회하였는데, 이 덕에 권혁주와 심준호 역시 4악장에서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4악장에서 장유진과 이한나의 호흡은 놀라웠는데, 아주 어른스럽고 성숙된 아티큘레이션과 함께 꼭 필요한 곳에서 서로 치고 빠져주는 영리함과 민첩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1년 전 연주회에서 아주 놀라운 해석을 들려주었던 바르토크는 이번 연주회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아주 대담하게 균형과 불안 사이를 오고 가는 현악 사중주 2번(Sz.67)은, 이전의 4번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매력을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선곡이었습니다. 특히나 비올라는 마치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인 것마냥 마력에 가까운 음색을 내뿜었습니다. 다만 2악장에서 첼로의 G현이 끊어지며 흐름을 방해한 점이 아쉬웠는데-하이든에서 첼로 소리가 유난히 생뚱맞게 들렸던 것은 아마도 이 사건의 전조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시 시작한 카프리치오소는 놀랍고 또 놀라운 호흡과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들려준 바르토크 3악장은 균형과 분열의 서사시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호랑이 눈을 마주보며 불안과 균열의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아예 한 동안 명정(酩酊)에 빠져들다 풀려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침 친애하는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가, 마치 이들의 연주를 듣고 쓰기라도 한듯, 자신의 걸작에 이런 문구를 남겨 두었네요.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종족이 믿고 있던 역사 의식의 경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사유해본 적이 없는, 아니 심지어 사유할 거리가 있다는 것조차 상상해보지 못한 한계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구름의 시커먼 암흑이 우주선에 다가와서 충돌했다. 선내에는 역사의 침묵이 깔려 있었다. …… 그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무한한 먼지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경악으로 휘청거렸고, 그들의 마음은 공포의 노래를 불렀다. ……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평화, 정의, 윤리, 문화, 스포츠, 가족 생활과 다른 생명체들의 말살에 대해 아름다운 선율의 사색적인 노래들을 불렀다.> (더글라스 애덤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中)

 

 

 

 

진취적이고 모험을 마다치 않았던 바르토크에 비하면, 베토벤(op.95 'Serioso')은 여전히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으로 둔한 느낌이었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리고 기민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곡의 진행에만 치중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악기 간의 연결성과 통일성이 떨어지고, 평이하고 안전하게 연주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완전히 밀착되었던 바르토크와 달리 미묘한 틈이 상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또 하이든과 바르토크에서 적절한 매력으로 히로인과 같았던 비올라는 여전히 바르토크를 듣는 듯한 음색을 유지해 균형이 무너졌고,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늘어지는 연주였습니다.

 

3악장에서는 1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간의 박자 차이가 확연했습니다. 어느 정도 호흡이 맞아들어간 비올라와 첼로와 달리, 1바이올린은 분명 제 박자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어… 저러다 박자 놓치겠는데' 싶을 만큼 불안하다가 긴박하게 제 박자로 돌아가는 모습은 이들에게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죠. 4악장에서도 여전히 음정과 음색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아직은 다듬을 곳이 많고, 아직은 하나의 '완벽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은 어느 수준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주에서도 이들은 명확한 팀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기량만으로 서로 간의 호흡 문제를 각자 해결하며, 여전히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보다는 '권혁주와 장유진과 이한나와 심준호가 모인 단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증명했죠. 불안과 균열의 정서가 녹아들어 있는 바르토크의 곡에서 하이든과 베토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는 것이 아직 이들이 팀보다는 개인으로서 훌륭하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큽니다. 출중한 연주자들이 모였다는 점, 젊은이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현악 사중주에 당차게 뛰어 들었다는 점, 그리고 이제 겨우 두 번째인 연주회에서 이전보다 어느 정도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칼라치'라는 이름이 지닌 가치를 돋보이게 합니다. 앞으로 한두 번의 연주회가 이들에게 기로이자 기회가 될 것이며, 이들은 그동안 훌륭한 연주자들답게 많은 고민과 대화로 좋은 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영역의 하나인 현악 사중주에서,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이 독주자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넘어 훌륭한 팀으로 거듭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