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 백건우 :: 2007. 1. 29. 12: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에 대한 평가는 거의 대부분, 어떤 앨범이건 언제나 호의적입니다. 이것은 한 작곡가의 작품을 열심히 파고들어 견고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 스타일과, 마치 구도자와 같은 그의 음악적 사상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음악에 천착하는 그를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부르며 존경 내지는 호의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백건우의 팬쯤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만큼 저는 그가 내놓는 대부분의 음반들을 좋게 바라보고, 그의 연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여기에 백건우가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가 20%정도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이 앨범은 제게는 치명적입니다. 음악가의 앨범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그 사전적인 의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뉘앙스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백건우의 다른 앨범과 마찬가지로 호의적인 것이 대부분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렇게 좋은 평점을 줄 수가 없습니다. 책임은 두 사람에게 돌아가겠군요.

백건우는 분명 훌륭한 피아니스트입니다. 굳이 팔이 안으로 굽지 않더라도 백건우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음악가죠. 수 많은 음반들이 명반의 대열에 올라섰으며, 심지어는 '작곡가의 영혼을 지니고 연주한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해석은 언제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있습니다.

안토니 비트 역시 훌륭한 지휘자입니다.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쿨에서 우승한 이외에도 수많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고, 폴란드에서 대표적인 지휘자로 내세울만한 사람입니다. 그가 이끄는 바르샤바 필하모닉도 관록이 대단한, 폴란드 최고의 오케스트라죠. 게다가 안토니 비트는 백건우와 이미 열 여덟번의 협연을 함께 한 적이 있고, 국내에서는 거의 레전드로 꼽히는 백건우의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Naxos)도 그와의 작품이지요.

문제는, 이 경험 많고 서로 호흡도 잘 맞는 편인 두 사람이 완전히 엇박자를 갖고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서로 의견합치 없이 연주를 한 듯한 느낌입니다-실제로 해석상의 차이 때문에 싸워버리고는 자기 템포대로 가서 완전히 엇박자로 녹음해버린 사람들도 있었죠-.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모두에서 이러한 문제가 느껴지는데, 이건 자기 템포대로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맞추려고는 하는데 도무지 잘 맞질 않는 느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호흡만 맞지 않고 각자의 연주에는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간 백건우는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답게, 포레는 포레답게 연주해왔는데, 이 레코딩에서는 도무지 '쇼팽'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발랄한 것이 불만이었던 크리스티안 치머만의 연주가 오히려 더 쇼팽답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백건우는 때로는 건조하고 때로는 너무 무거운 터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장점인 명징하고 정확한 터치마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안토니 비트의 지휘 또한 강약과 템포 조절에 완전히 실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갑작스럽게 금관 파트가 커다랗게 튀어나온다거나, 독주자를 앞서가거나 때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듯합니다. 이 역시 오히려 지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치머만의 지휘가 좀 더 균형잡힌 것 같습니다-게다가 치머만과 레코딩한 오케스트라는 임시로 만들어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죠-.

이러한 부조화스러운 느낌이 그냥 저의 개인적인, 그리고 일천한 청음 경력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음반은 유럽에서나 국내에서나 상당히 호평과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저 개인에게는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좋게 들으려고 해도 당최 좋게 들을 수가 없었다는 점만은 확연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백건우에게 쇼팽이 맞지 않는 것 같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