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예술의 전당 토요콘서트 -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심준호/최희준/KBS교향악단) :: 2017.06.20 01:06

 

매일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잊어버린다. 이것이 아마도 사람들이 고독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게 아니면, 그것은 엄숙하고 장엄한 우둔함이다.

- 알바로 무티스,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핏 듣다 보면 별다른 화려한 기교 없이 시적인 감성이 주가 되는 것 같고, 또 특별하게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멜로디 없이, 게다가 악장 구분도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듣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끝이 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처음 듣는 이에게 이 곡은 다른 곡에 비해 재미가 덜한, 좀 덜 매력적인 곡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까지는 미쳐가는 작곡가의 미숙한 곡으로 간주되며 잘 연주되지 않았고, 요즘도 다른 첼로 협주곡에 비하면 즐겨듣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들어가서 악보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쉴 틈 없이 빠르고 현란한 음표의 연속, 하이 포지션과 1포지션을 정신 없이 오가며 핑거링을 쫓아가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왼손, 양쪽 끝 현(C현과 A)을 널뛰어야 하는 오른손, 스포르찬도와 포르티시모, 피아노 사이를 방황하는 셈여림, 처음부터 끝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한 순간이라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오케스트라와의 호흡, 뭔가 진행되는 듯하다가 갑자기 성격이 바뀌어버리기를 계속하는 멜로디.

 

 

그래서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듣는 이에게 덜 매력적인 만큼-연주자에게 대단히 어려운 곡입니다. 일단 기술적으로만 접근해도 굉장히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곡 안에서 여러 개의 성격이 마구 뒤섞여 나오고,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극단을 오가는 모습은 슈만이 앓았다고 하는 우울증과 정신착란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첼로의 역사,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위대한 곡입니다. 약 25분 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우울, 슬픔, 격정, 분노, 두려움, 고독, 기쁨, 행복, 사랑, 환희, 경외가 모두 담겨 있고, 곡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악장에서 집요하게 꼬리를 물고 되새겨지지만, 그로부터 발전된 선율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감정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순간은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의 멜로디들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실존하는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현상적 접근이자, 매일의 다름과 고독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 대한 헌사(獻辭)인 것입니다.

 

이제 막 만 서른을 바라보는 젊은 첼리스트 심준호가, 오랜만에 들려주는 협주곡으로 슈만을 들고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느 모로 보나 복잡하고 힘겨운 이 곡을 어떻게 들려줄지, 그리고 그간 얼마나 발전했을지 궁금함과 기대와 동시에 약간의 우려를 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어깨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연주 자체만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이기도 했으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부분은 조금은 약한듯 싶은 스포르찬도(sf)와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그 이후의 16분 음표들이었습니다. 악장 내내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저음부의 강력한 스포르찬도는, 사실 이후에 이어지는 16분 음표들의 급격한 상승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쌓아둔 에너지를 그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듯한 모습은 약간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휴지기 뒤에 나오는 57마디의 숨표와, 바로 이어지는 부점이 이 의문을 풀어주었습니다. 앞부분에서의 격렬한 감정을 추스르며, 약하지만 분명한 희망을 살며시 내비치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이 숨표와 부점에서, 심준호는 숨을 슬쩍 내려 놓으며 정말 좋은 호흡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잠깐의 호흡은 다소 약해 보였던 초반의 스포르찬도와 상승 멜로디와 오묘한 대조를 이루며, 곡이 지닌 비극성과 희망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느리게(Langsam)' 진행되는 2악장은 슈만 최고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멜로디가 매우 아름답게 짙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이 부분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부드럽게(dolce)'라는 지시어와 함께 18마디부터 시작되는 더블스탑 아홉 마디에서는 느리게 이어지는 미세한 음의 떨림을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표현해 내며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2악장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돌변하며 난입하는 3악장은 이 어려운 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심준호는 날뛰다가도 곧 잠잠해지고, 점잖다가도 이내 포효하는 복잡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유로워 보이는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죽을 힘을 다 했을- 테크닉과 자신감 넘치는 대조를 통해 본인의 색이 뚜렷한 해석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거침 없는 카덴차와, 의심의 여지 없는 확고한 피날레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앙코르로 연주한 J. S.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3번 프렐류드에서도 보여 주었듯, 이날 심준호는 이전과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산뜻하고 편안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소 짓눌린 듯한 음색을 내던 전대의 대가들이나, 최근 가장 탁월한 연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설리스의 연주와도 분명 다른 해석이었습니다. 여기에 KBS교향악단은 든든한 동료가 되어 주었고, 특히 지휘자 최희준은 이날 연주의 커다란 수확 중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1부, 2부(슈만 교향곡 2번) 모두 뛰어난 지휘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홀의 문제인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모두 다소 작은 느낌인 점이 아쉬웠습니다.)

 

찰나의 예술이자 원전의 끊임없는 재생산을 전제로 하는 예술인 음악(특히 클래식 음악)은 분명 '제례의 재현(再現)'이라는 종교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준호는 갖가지 감정을 뒤섞어 쏟아 부으면서도 끊임없이 희망과 연결지었던 슈만과, 그가 단 2주 동안 놀라운 집중력으로 만들어낸, 모든 평범한 -동시에 위대한- 인간들에 대한 치열한 헌사를 다시금 우리 앞에서 재현해 냈습니다. 다른 누구와도 다르게, 자기만의, 인간적인, 불행했지만 동시에 행복했던, 한 사람의 인간 로베르트 슈만으로.

 

 

 

(2017년 6월 17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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