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 아르카디 볼로도스 :: 2007. 1. 2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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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1990년, 소비에트 공산당이 해체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위대했던 러시아의 음악적 유산들도 해체되었습니다. 어느 오케스트라에 가든 악장을 맡을 수 있을만큼 대단한 역량을 지닌 연주자들은 썰물처럼 러시아를 빠져나갔습니다. 매일같이 연주회가 열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명 연주자들의 실황을 들을 수 있던 소비에트 시절은 그저 추억이 되고, 러시아 음악은 빈 쭉정이만 남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죠.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괜히 자비를 털어가면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만든 게 아닙니다.

러시아 피아니즘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호로비츠로 대표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추억하곤 하죠. 하지만 위대한 러시아 피아니즘은 역시 위대한 다른 음악적 유산들과 함께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은 멀게만 느껴지는군요. 길렐스와 호로비츠의 죽음 이후로는 이렇다할 만한 연주자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아오던 에프게니 키신은 커가면서 오히려 죽을 쑤고 있고-더구나 러시아의 비르투오시티와는 많은 거리가 있습니다-, 미하일 페투호프는 아직까지 호로비츠나 길렐스와 같은 포스를 뿜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하일 플레트뇨프 역시 러시아의 전통적인 피아니즘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사람이죠. 러시아 피아니즘은 분명 옛 영광을 뒤로 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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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 볼로도스는 아마도 죽어가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잇고 그것을 중흥시킬 적임자일 겁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볼로도스는 수퍼 피아니스트, 즉 엄청난 테크닉과 음악성을 동시에 지닌 수퍼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사람이죠. 음악성은 뛰어나지만 테크닉은 부족하다든가, 테크닉은 좋은데 음악이 없다는 평가를 거부해도 될 만합니다. 아마 테크닉 좋기로 마르크-앙드레 아믈랭과 함께 첫손가락에 꼽을만 할 거예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테크닉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압박이 심한 곡입니다. 그래서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하고, 실패하곤 했죠. 영화 '샤인(Shine)'의 실제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갓은 미쳐버리기도 했습니다-물론 이 곡이 직접적인 원인인 건 아닙니다마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작곡가를 원망했고, 그래서 이 곡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곡'이라는 과장된 수식까지 따라다녔습니다.

볼로도스는 마치 그러한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마냥 이 곡을 연주합니다. 1악장만 들어봐도 그가 자유롭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전혀 긴장되지 않은 것처럼, 호흡이 너무 자연스럽거든요. 손에 꼽을 정도의 미스터치만을 내는 테크닉은 완벽 그 자체이고, 듣는 사람을 전율하게 하는 울림은 그가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을 정도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일곱 개의 동곡 레코딩을 들어보았는데-물론 다들 손에 꼽는 연주입니다-, 이 곡에 있어서 '인상적이다'는 평가를 넘어 '완벽하다'는 평가를 내릴만한 연주는 볼로도스의 것밖에 없을 듯합니다. 아마 라흐 3번을 처음 듣는데 이 앨범으로 듣는다면, 다른 연주는 지루하거나 듣기 싫어질 겁니다.

많은 분들이 백건우가 연주했던 같은 곡의 레코딩을 기억하시겠죠. 개인적으로 잘 된 연주라고 평가하지만 백건우의 연주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아무래도 두껍고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지는 못하니까요. 백건우의 연주는 칙칙하고 무겁습니다. 대신 울림이 깊습니다. 1악장 카덴차는 그대로 하나의 전범이 될만도 하죠. 반대로, 볼로도스의 연주는 영롱합니다. 초반부터 뭔가 밝은 분위기로 나아가죠. '샤인'의 역설적인 어두움을 보신 분들은 '라흐 3번이 밝다니?'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예, 볼로도스의 라흐 3번은 분명 밝습니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볼로도스의 밝음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처럼 황홀한 빛을 연출합니다. 백건우의 연주가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면, 볼로도스의 연주는 르네상스 양식입니다. 백건우가 최대한 빛을 자제했다면 볼로도스는 빛을 있는대로 다 받아들였죠. 그래서 백건우의 연주는 지나칠 정도로 절제되서 답답한 느낌이 들지만, 볼로도스의 연주는 호쾌하면서도 따뜻합니다. 이 곡의 연주에서 더 이상의 명징함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지나친 거죠.

협주곡에 있어 오케스트라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키신의 라흐 3번 녹음은 독주자 스스로의 연주가 과장되어 있는데다, 세이지 오자와가 이끈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엉망이었죠. 마치 질서없이 후퇴하는 군대같은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이 앨범도 지휘자가 제임스 레바인인지라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레바인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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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가치에 적합한, 그러니까 메트로폴리탄적인 지휘자니까요. 그간 제게, 레바인의 지휘는 탄력은 좋았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제 음악 경력이 일천하다는 말도 되지요-. 하지만 레바인은 피아노를 어떻게 배려해줘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지나치게 약해서 뛰어난 피아니스트에게 묻히는 느낌도 주지만, 또 어떻게 본다면 지나치게 목가적인 느낌마저도 주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 볼로도스와 잘 맞는다는 점이죠. 레바인의 연주는 마치 햇살 비치는 바닷가에서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도소리 같습니다. 이쯤 되면 그 동안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들에게 투쟁의 대상이었던 라흐마니노프는 어느새 바닷가에 피아노를 놓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연주하는 영화 '피아노'의 포스터가 주는 느낌 정도로 '편안해 집니다'-피아노의 내용 자체는 별로 평화롭진 않지만 말이죠-. 하지만 레바인은 동시에 언제든지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바다입니다. 승리를 향해 진군하는 군대처럼 언제든지 대포가 준비되어 있는 연주라고 하면 될까요?

이 레코딩에서 단 하나의 불만이 있다면 그 부분은 바로 1악장의 카덴차입니다. '화산이 터지는 듯한' 백건우의 카덴차나 '타이탄의 심장소리'와 같은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좀 약한 느낌입니다. 다른 부분에 비해 카덴차가 울림이 약하다니 아쉬운 부분이죠. 좀 더 둔중하고 좀 더 묵직하게 울렸으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맑고 자유로운 볼로도스의 터치가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는군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약점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볼로도스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에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 될만큼 훌륭한 연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연주가 정말로 놀라운 이유는 엄청난 테크닉과 음악성 이외에도 또 한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앞에서 보셨겠지만 이 연주, 라이브입니다. 휘몰아치는 3악장의 마지막이 끝나고 나서 터져나오는 박수소리가 이 연주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윽, 듣고 있는 지금도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네요. 라이브에서 이 정도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돕니다. 사실 연주가 너무 잘되서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쭉 읽으면서 '이 놈 이거 잡소리만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셨겠지만, 들어보시라는 말 외엔 정말로 할 말이 없어요-말로는 이번만 이런 것 같지만 제가 쓰는 글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일 겁니다-.

라흐 3번 앨범을 추천해 달라면 한 대여섯 장 정도는 훌륭하다고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신다면 이 앨범을 권하겠습니다. 아르카디 볼로도스는 분명히 러시아 피아니즘의 불씨를 되살려 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