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현악사중주 시리즈 -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 2012. 3. 26. 22:03


최근 들어 젊은 연주자들이 결성하는 앙상블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음악하는 이들은 실력이나 음악적 성향과 전혀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거의 무조건적으로 독주자로 키워지는 우리나라의 음악계에서, 더구나 그간 제대로 된 연주활동을 꾸준히 해온 실내악 앙상블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아이돌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는 이들 실내악단의 활발한 활동은 상당히 특이하면서도 반가운 현상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단지 실내악 단체가 하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연주자들이 다양한 음악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닙니다.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Kallaci String Quartet)의 창단은 이미 촉망받는 단계를 넘어, 유망주라기보다는 독주자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젊은 연주자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우리 음악계에 또 하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바이올린의 권혁주와 장유진, 비올라의 이한나, 첼로의 심준호는 이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값이 동 세대 최고를 상징하는 수준에 올라서 있지요. 때문에 이들의 창단 연주회나 다름 없는 이번 연주회는 상당한 기대를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베토벤과 바르토크, 슈베르트로 이루어진 촘촘한 프로그램이 그런 기대를 더욱 높이게 해왔습니다.

첫 곡인 베토벤 현악사중주 op.59-3 '라주모프스키'는 불안하게 시작했습니다. 곡의 전체 분위기를 길다란 한 음 한 음으로 제시하는 서주부에서 음이 흔들리면서 전반적으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로 인해 묵직하게 눌러지다가 급작스럽게 던져져야 할 주제가 어딘지 어색해져버렸지요. 다행히 1바이올린(권혁주)의 리딩이 꽤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불안정한 모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바이올린의 강한 리딩은 균형이 쏠리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1바이올린의 자기 주장이 강력한 데 비해 첼로의 포지셔닝은 거의 수수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차이가 났습니다. 이로 인해 음악이 분산되어 마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첼로가 앞으로 나섰더라면 곡 전체가 무너지고 산만한 음악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집요하게 균형을 맞추려는 첼로의 노력은 2악장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비브라토 없이도 굉장한 존재감을 내보인 비올라와 여전히 강한 소리를 내는 퍼스트 사이에서, 첼로는 다소 위축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만 마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듯한 공간감으로 악기 간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불안불안한 균형은 3악장에 가서야 해소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린 연주자들의 능글맞은 3악장은 그냥 듣고만 있어도 즐거웠거든요.

이들의 발랄하고 청년다운 연주는 4악장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특히 1~3악장에서 크게 앞으로 나서지 않던 2바이올린(장유진)의 눈부신 연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어쩌다 균형이 무너지고 간혹 엉성한 앙상블이 눈에 띄었지만, 연주를 앞두고 이들이 곡을 연습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감안한다면 호흡이 잘 맞는 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대로 두어도 좋은, 20대다운 베토벤이었지요.

이 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바르토크의 현악 사중주 4번이었습니다. 전체적인 균형이 중요한 베토벤보다, 각자의 개성을 뽑아낼 수 있는 곡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균형이 잘 맞고 각자의 소리도 분명하게 튀어나왔습니다. 다소 경직된 바이올린에 비해 첼로(심준호)와 비올라(이한나)가 제대로 물이 오른 소리를 들려주었는데요, 특히나 비올라는 놀랄 만한 연주로 곡의 분위기를 주도하다시피 했습니다.
 
첼로의 비르투오시티도 돋보였지만 아무래도 이 날 바르토크의 히로인은 비올라, 이한나였습니다. '섹시하다'고 표현한 이 연주의 느낌은 비올라가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지요. 4악장에서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 같은 주제 재현부도 아주 좋았고, 마자르 족의 민속음악을 차용한 5악장은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세련되며 신선하기까지 한, 놀라운 연주였습니다.


바르토크에 비한다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1악장은 불분명하고 처지는 느낌이 역력했고, 수선스럽고 어수선한, 세기(細氣)가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각 포지션의 개성이 느러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응집력이 좋지도 못한 연주였지요. 바이올린 두대와 비올라-첼로가 두 대씩 따로 나누어지는 소리였습니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내딛는 모습 없이 어딘지 성미가 급해 보이는 2악장도 아쉬웠습니다. 다만 멜로디 라인을 연주하는 첼로의 섬세함이 돋보였고, 감정을 쏟아내는 후반부에서는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3악장에서도 어수선한 느낌이 계속되었지만, 4악장에 이르러서 세밀한 표현력이 살아나며 균형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비올라와 첼로의 기량은 명불허전이었고, 계속해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균형에도 불구하고 두 바이올린 역시, 확실히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네 단원 모두가 독주자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각 파트의 개성이 강조되는 부분에서 균형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바르토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곡 전체의 균형보다 악기마다의 개성이 더 중시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날 이들의 연주는 기대와 아쉬움을 모두 안겨주는 연주였습니다. 각자가 독주자로서 지닌 명성에 비해 아쉬운 연주였지만, 이제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진 신생 단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더 기대되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연주회가 끝날 때쯤 떠오른 생각은, 5년쯤 전에 내한했던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아마도 유진 드러커가 남겼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현악 사중주의 해석은 같은 자세로 같은 음을 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점이 같은지가 중요하다.'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음악적 지향점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한동안,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