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슈베르트 후기 현악 사중주집 - 에머슨 현악 사중주단 :: 2008. 2. 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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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개인의 산물은 당사자의 기질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글이나 회화, 공예, 사진작품들이 모두 그렇지요. 음악 역시 작곡가의 기질적인 특성을 잘 반영하는 예술분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이나 미술, 사진 같은 시각적 예술을 접하면서 그 주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음악을 들으면서도 작곡가의 모습과 생활과 인생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베일에 쌓인' 듯한 음악을 들으면서는 평생 고백하지도 못할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홀로 간직하며 살아간 그의 인생을, 생상을 들으면서는 여행을 좋아하고 신기한 것을 찾아다녔던 그의 취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것이지요.

슈베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곡들은 많은 부분에서 어두운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듣는 사람을 암담한 기분에 빠지도록 만들곤 합니다. 더구나 수도 없이 써내려간 가곡들의 상당수는 '마왕'이니 '죽음과 소녀'니 '죽음에'니 하며 검정에 가까운 우울함을 뿜어내거나, 아니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처럼 결국에는 죽음으로 그 파국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슈베르트 자신이 암울하고 어렵고 죽음과 가까운 생활을 해서일까요? 제게 슈베르트는 그렇게 암담한 작곡가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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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슈베르트를 계속해서 듣는 이유는 그의 곡이 단순히 우울하고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아름답고 우아한 멜로디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 우아한 멜로디 안에 지극한 슬픔과 죽음에 대한 번뇌까지 들어있는 슈베르트의 곡들은, 이미 젊은 나이에 고민과 고뇌와 고통으로 담금질되어 가던 그의 모습이 그대로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의 이중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와 우울한 내용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슈베르트의 곡들은 많은 경우에 그 무대를 시골에 두고 있는데, 이를 표현하는 멜로디의 성격은 장소적 배경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대단히 깔끔하면서도 어느샌가 격정을 내어뱉는 그 인상은 확연히 도회적이거든요. 특히 여러 곡들에서 나타나는 색채적인 음 배치는 내내 도시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이력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머슨 사중주단의 슈베르트 연주는 어쩌면 기존의 슈베르트 해석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들의 연주성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슈베르트는 이렇게'와는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현악 사중주단보다도 치밀하고 지적이며 날카로운 이들의 해석이야말로, 도회지의 지적인 로만티시즘의 영향을 받아 막 피어나던 낭만주의 음악의 초반을 장식한 슈베르트의 이중적인 작법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 가장 '잘 나가는' 현악 사중주단의 하나일 에머슨 사중주단은 그간 보여준 냉정하고 지적인 통찰을, 이 앨범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튼실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팀워크와 확실하게 절제된 악상 전개, 결코 넘쳐나는 법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격정적인 보잉과 멜로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쳐지지 않아 모든 악기의 소리가 고르게 들리면서도 산만하지 않은, 힘 있는 전개. 지적 해석을 목표로 삼는 모든 팀들이 전범으로 삼을만한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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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세련되며 도회적인 해석이 으레 그렇듯이, 에머슨 사중주단의 연주 역시 듣는 이에게 아주 큰 격정을 던져주거나 대단히 충격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연주는 슈베르트 해석에 있어 알반 베르크나 여타의 다른 전통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특히나 아슬아슬하게 감정의 방아쇠를 당길듯 말듯한, 잘 벼려진 쇠를 만지는 듯한 서늘한 세련미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슈베르트를 가장 슈베르트답게 해석하는 것은 그가 살아왔던 인생과 음악의 이중창을 잘 살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비단 슈베르트 개인의 이중성 뿐만 아니라, 당시의 독일 낭만주의가 지녔던 환상적이면서도 지극히 지성적인 면모를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한마디로 알아듣기 어려운 당시의 낭만주의에 대한 이해 정도가 해석의 성패를 가른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따라서 슈베르트를 암담하거나 격정적이거나, 아니면 우아한, 한쪽의 모습만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슈베르트가 되어버릴 위험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에머슨 사중주단은 이같은 함정을 지혜롭게 피해간 것 같습니다. 독일 연주단체가 아님에도 정곡을 찌르는 낭만시대와 슈베르트에 대한 탄탄한 이해, 여기에 덧붙여 멤버 개개인의 녹록치 않은 지성적인 면모가 치우치지 않은 좋은 연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바탕이겠지요. 어느덧 결성 30주년을 훌쩍 넘겨 세계 최고의 현악 사중주단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에머슨 현악 사중주단의 다음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기대하는 것은 저만의 과욕이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