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풀랑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 브라카 에덴 / 알렉산더 타미르 :: 2008. 4. 26. 11:44






(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그 자신이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폴리냑 공작부인(Princesse Edmond de Polignac, 1865-1943)은

남편 에드몽 드 폴리냑 공작의 사망 이후 자신의 살롱에서

프랑스의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이 때 공작부인의 덕을 본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라벨, 드뷔시, 파야, 스트라빈스키(프랑스인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했죠), 포레,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풀랑입니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바로 이 폴리냑 공작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곡한 곡입니다)



풀랑, 하면 일단 프랑스를 대표하는 천재, 그리고 희대의 싸이코로도 알려져 있지요.

그의 음악적 특징은 드뷔시(인상주의)와 바그너(낭만주의)로 대표되는 당대의 음악조류를 거부하고

신고전주의라고 칭할 수 있을만큼 고전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이라면 고전주의 음악에 비해 좀 더 다이내믹하게 진행되고,

장식적인 효과로써의 불협화음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 점입니다.

그래서 풀랑의 곡들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20세기 음악 같으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18세기 음악 같은, 이중적인 느낌을 주곤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풀랑의 대표적인 곡인데요,

듣는 순간 '아, 이 인간은 진짜 천재구나' 하는 느낌과 더불어

'진짜로 싸이코는 싸이코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이 곡은 역시 폴리냑 공작부인의 주문으로 1932년 여름에 작곡되었고

작곡가 자신과 친구인 자크 페브리에가 그 해 9월 베니스에서 초연했습니다.



풀랑의 천재성은 불협화음과 협화음을 병렬/직렬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자신이 의도하는 선율의 단순함과 명료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잘 나타납니다.

마치 아스라한 높이의 외줄에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부리는 모습 같달까요.

그래서인지 이 곡은 겉모습이 꽤 복잡한데도, 한 번 듣고나서는 선율을 거의 외울 수 있었습니다.

곡의 전체적인 인상도 물론 머리에 쏙쏙 들어와 박히더군요.

특히 섬세한 음들의 배치와 서비스처럼 따라오는 신나는 다이내믹은,

곡을 듣는 내내 '다음엔 어떤 게 나와서 재미있게 해 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 곡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음원은 풀랑의 이 곡을 비롯하여 피아노 협주곡(파스칼 로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오르간 협주곡 등이 들어있는 데카의 2 for 1 앨범입니다.

피아노는 브라카 에덴과 알렉산더 타미르가 연주했고,

지휘는 섬세함과 다이내믹으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

세르지우 코미시오나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참여했습니다.

3악장의 금관 파트가 너무 뭉개지는 점(조금만 더 명료했더라면 좋았을텐데요)이 아쉽긴 하지만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넘나드는 풀랑의 줄타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 마음에 드는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