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브람스 이중협주곡 - 지노 프란체스카티 / 피에르 푸르니에 :: 2008. 8. 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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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이중협주곡 3악장


라이카(Leica) M3는 50년이 훨씬 넘은 카메라지만 아직도 100만원에 가깝거나 종종 그를 상회하는 가격으로 거래됩니다. 필름을 끼우는 데다 필름 장전 레버를 두 번씩 돌려줘야 하는 더블 스트로크 방식이고, 이외에도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은데도, 그 묵직한 황동제 바디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M3 뿐만이 아닙니다. M3보다 더 이전에 만들어진 바르낙 시리즈도 아직까지 꽤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고, 라이카가 아닌 다른 클래식 카메라들도 여전히 활발하게 중고시장에 나오곤 합니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열에 서넛은 1000만 화소가 넘는 DSLR을 들고 다니는 세상에서,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카메라들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왜일까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던 필름 카메라를, 저를 포함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나온지 50년도 더 된 카메라들이 여전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는 해저물녘의 이끼 낀 낡은 성벽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오래된 도자기가 품고 있는 수백 년 전의 하늘빛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옛 물건을 보며 경의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낡은 LP판을 보며 추억에 참기고, 오래된 책 한켠에 남은 메모를 보며 옛 사람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주위에서 가장 오래된 빛을 쬐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된 것들을 연모합니다. 오래된 것들은 단지 '헌 것'이 아니라, '오래됐지만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것은 아름답습니다.

 

오래된 음반 또한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주법이 연구되고 새로운 음악이 나오고,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테크닉으로 무장한 새로운 연주자들이 놀라운 음반을 들고 나와도 여전히 사람들이 옛 연주자들의 음반을 찾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음반이 낡아 음질이 떨어져도, 연주자들이 다 늙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죠.

 

프란체스카티와 푸르니에는 힘이 넘친다거나 기교가 엄청나다거나 하는,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말하는 비르투오소는 아닙니다. 그래서 상당한 기교를 요하는 이 음반에서도 -더구나 라이브인지라- 완벽한 테크닉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특히 1악장에서 프란체스카티는 귀에 확 띌 정도로 적당히 비비고 넘어가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푸르니에도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음량이나 테크닉과는 거리가 먼만큼 '굉장하다!'는 느낌까지 주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이 연주는 다른 의미에서 '굉장합니다.' 아니 굉장하다기보다는, 다릅니다. 두 사람은 Type A로 연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곡을 Type B로 연주해냈거든요. 지금까지 저는 브람스의 곡을, 대결 또 대결, 특히나 이중협주곡은 독주자들의 포스가 느껴지는 살벌함으로 이해해 왔습니다-저만 그럴지도 모르긴 하지만-. 들어온 연주가 죄다 그런 분위기였던 탓인지, 프란체스카티와 푸르니에의 브람스는 완전히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연주는 다시 한 번 굉장합니다.

 

이들의 연주는 1악장부터 뭔가 다릅니다. 가장 비장하고 대결구도가 명확한, 그러니까 어깨에 힘이 막 들어갈 법한 시작부터, 두 사람은 허허거립니다. 왠지 아주아주 빡세게 달려줘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허허거리면서 대화를 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정도랄까요. 약간은 고즈넉하면서 유유자적하는 느낌, 물론 포스가 느껴지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비장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조금은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중협주곡' 하면 떠오르는 곡조는 3악장의 시작 부분이지만, 그리고 3악장도 충분히 좋긴 하지만, 이 앨범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2악장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형 브람스'는 2악장에서 꽃을 피우는데요, 여긴 뭐랄까요...나무처럼 오래된 친구 둘이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런 그림, 낡은 책의 좋은 냄새, 가을녘에 벼이삭 사이로 스미는 저무는 햇살, 기분 좋게 한두 잔 비운 농주 사발...아니면, 한없이 편하고 기분 좋은, 볕 좋은 정원의 안락의자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의 2악장을 봄날 새로 돋아난 버드나무잎만큼이나 사랑합니다.

 

'완벽한 연주'를 원하신다면, 프란체스카티와 푸르니에는 정답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연주'를 원하신다면, 이 두 사람의 연주가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프란체스카티가 파가니니에서 그랬듯이, 푸르니에가 바흐에서 그랬듯이, 이들은 음악 그 자체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도 이 오래된 연주를, 오래되었기에 더 아름다운 녹음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50여년 전 에든버러에서, 그때도 역시나 아름다웠던,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들었던 청중들이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