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스크리아빈 환상곡 op.28 -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 2008. 8. 16. 14:01










일찍부터 피아노의 수재로 인정받으며 젊은 나이에 이미 음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성공을 거둔 피아니스트였던 스크리아빈은 모교인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직하던 1900년,

이 환상곡을 작곡했습니다.

쇼팽의 작법, 바그너와 리스트의 반음계주의, 드뷔시의 인상주의 등 당시 존재하던

많은 음악적 기법들에 영향을 받은 그는 단순히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어법을 발전시키는데요, 이 환상곡은 그의 음악적 성향이 출발하는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는 아직 말기의 소나타에서 등장하는 무조성주의나 모호하고 비전통적인 화성의 사용이

두드러지지 않거나 나타나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약간은 익숙치 않은,

그리고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스크리아빈의 작품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좋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말기 소나타처럼 놀라운 이세계의 풍모가 보이지는 않지만, 스크리아빈은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신비주의와 신지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만큼, 이 곡 역시 동양적인 신비로움이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이는 뭐랄까요...마치 음으로 색채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인데, 드뷔시의 인상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비주의적인 영성체험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그만큼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강렬하고 휘황찬란하죠.

이러한 스크리아빈의 음악세계에 대해 그의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던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까페에 앉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스크리아빈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크리아빈의 새로운 발견은 화음조성과 태양광선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는 이 관계를 응용하며 거대한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빛과 색채의 연주가 될 것이다."




스크리아빈은 후기 낭만파적인 고집과 너무나도 독특한 자기만의 어법으로 인해 한 악파를 형성한다거나,

특별한 제자를 두지는 못했습니다. 프로페서(Professor)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스터(Master)가 된 셈이지요.

후계자는 키우지 못했지만, 그 원인이 된 독특한 사고방식 덕에 우리는 이렇게 독특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어찌보면 또 즐거운 일이겠습니다.




음원은 우리 시대의 또다른 마스터,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 연주한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전집입니다.

이 앨범은 뒷날 리뷰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리뷰로는 피에르 푸르니에와 지노 프란체스카티가 함께 연주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직 글을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현재 집중 감상 중입니다.

곧 글을 완성하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휴 기간 내내 날이 흐릿흐릿하고 비가 곧 올 것 같은 분위기네요.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인데, 감기 조심하시고, 연휴를 맞아 휴가 떠나신 분들은

즐거운 휴일 보내시고 무사히 집에 돌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