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2007. 1. 2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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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쓰는 사람에게 굉장한 부담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어떻게 본다면 절대적인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다면 그들에 대한 글쓰기는 더할나위 없이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도 있겠지요. 더구나 그들에 대한 감정이 호감보다는 비호감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곤란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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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업의 전형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분야, 그러니까 지휘와 첼로 연주에 있어 어쨌든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고, 수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대단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죽은 지 오래고, 한 사람은 많이 늙어서 예전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들의 이미지는 분명 부담스러울 정도로 큽니다. 마치 400*600 사이즈밖에 안되는 칸에 1024*768 사이즈의 사진을 올려놓은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이 문제들보다 가장 곤란하고 어려우며 커다란 문제는, 제가 이 두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가끔씩은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의 호오를 떠나서, 이 앨범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에 있어서 걸작 내지는 최소한 스탠다드에 가까운 호평을 받고 있는 앨범입니다.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를 모두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그러한 사실만은, 그리고 이 앨범이 최소한 그런대로 잘 된 앨범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카라얀의 선율미와 로스트로포비치의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정직함은 이 앨범에서 서로의 단점을 상쇄하고 있지요.

1악장의 시작은 카라얀답습니다. 제가 '카라얀답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좋은 뜻이 아닙니다. 카라얀의 리딩은 신기하게도 주자들로 하여금 그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정도만을 요구하는 것인지, 곡 자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줍니다. 흔히들 카라얀을 비판할 때 근거로 들곤 하는 '선율미만 강조한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겠지요. 더구나 관악파트는 너무 두리뭉수리한 데다, 현악 파트는 너무 뾰족한 느낌을 줍니다. 그나마 이런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없애주는 것이 4분여께에 시작되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솔로 파트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완전히 들어맞는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습니다. 그냥 가시방석을 쎄무로 덮어놓은 것 같거든요. 로스트로포비치는 부드럽지만 압도적이지는 못합니다.

그런대로 편안한 2악장을 지나면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3악장의 유명한 소절이 나오게 되는데, 사실 처음에 들을 때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듣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만, 들으면 들을 수록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음반을 몇 년 째 들으면서도, 최근에 와서야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음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커다란 오케스트라의 음량에 묻혀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언밸런싱은 레코딩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처음에 느꼈던 압박감은 지금은 어디로 간 것인지 전혀 느껴지지를 않는군요. 그렇지만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는 빠른 템포의 3악장을 대단히 무난하게 넘깁니다. 카라얀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그 테크닉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여기에서 딱 하나는 인정해야겠군요. 카라얀은 최고의 '테크니션'입니다-최고의 지휘자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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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로포비치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연주의 이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최근에 와서 느끼고 있는 점이지만,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그 자체가 어딘가 어색합니다. 테크닉에 있어서야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그가 내는 소리에 있다고 봅니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기름 같거든요. 악기의 문제인지 연주 스타일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다른 녹음을 들어보아도 확실히 뭔가 지나치게 미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연주 스타일 자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소리가 미끄럽다보니 자연스럽게 음량도 부족해지고, 오케스트라에 그냥 묻혀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케스트라와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은 취향에 따라 칭찬받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제 경우에는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에 묻히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맘에 들어하지 않게 되는군요. 게다가 소리에서 느껴지는 기름기는 저로 하여금 그의 연주에 쉽게 다가설 수 없게 만듭니다. 정말 큰 문제는 아무래도, 그가 내는 소리가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라는 점일 듯합니다. 단단하고 정격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소리는 미끌미끌하다니요.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노는 격입니다.

어쩌다 보니 잘 된 앨범이라고 말해 놓고는 계속 안 좋은 소리만 하게 되었습니다만, 사실 이 앨범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테크닉만 놓고 본다면 굉장한 레코딩입니다. 특히나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이끄는 카라얀의 능력은 굉장한 것이지요. 언제나 그렇듯이, 거기까지, 이지만 말입니다. 이질감을 숨길 수는 없겠지만 로스트로포비치와 카라얀의 호흡도 상당히 잘 맞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곡에 있어서 이 앨범보다 잘 되거나 유명한, 다시 말해 쉽게 찾을 수 있는 앨범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마음에 별로 안 들지만 그래도 잘 된 구석이 있고, 찾기에 편한 앨범 정도라고 할까요? 두 대가의 만남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한, 그리고 수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평가가 되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칭찬은 뛰어난 테크닉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