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마랭 마레 비올라 다 감바 작품집 - 미에네케 반 데어 벨덴 :: 2007. 2. 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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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아마 처음 보시는 분들은 재킷 사진을 보고 의아해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은 여섯 개에, 모양은 첼로 같은데, 첼로라고 하기엔 좀 작고(게다가 첼로는 네 줄), 요즘 악기와는 약간 다른 모양, 거기에 뭔가 화려한 장식까지 붙어있으니까요. 그 뿐만이 아니라, 잘 보시면 악기의 지판 위(왼쪽 팔 뒷부분)에 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이 악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제목에 다 써놓고 순진하게 퀴즈를 내는 순진한(마음만은 비단결) 짓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 악기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입니다-제가 어릴 때 나왔던 두부스낵 '감빠'가 아닙니다-. 흔히 '비올(Viol)'이라고 줄여 부르는 옛 악기이지요. 16~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주로 살롱에서 연주된 악기로, 바이올린족(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쓰) 악기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널리 쓰였던 한 때의 인기스타죠. 발음의 유사성 때문인지, 비올을 비올라나 첼로의 일종으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비올족은 바이올린족과는 다른 악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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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족의 악기는 대개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가장 작은 것이 비올라 다 브라치오(트레블 비올), 중간이 비올라 다모레(테너 비올), 그리고 가장 큰 것이 바로 비올라 다 감바(베이스 비올)입니다-더블 베이스 비올도 있다고는 하는데, 아이오와주립대나 미국 비올 협회 쪽 자료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비올의 역사는 15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Spanish vihuela'라는 스페인 악기가 비올라 다모레와 모양과 크기, 조율방식이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옆 사진에서 귀여운 복장을 한 아저씨가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비올라 다 감바입니다. 사진의 악기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단순한 곡선에 C자 모양의 울림구멍이 특징이며 6현을 사용합니다-프랑스에서는 7현 비올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지판에 기타처럼 프랫이 붙어있다는 점입니다. 운지할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화음을 좀더 숩게 낼 수 있는 프랫은 바이올린족 악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치이지요. 사진과 같이 엔드핀 없이 무릎에 끼운 채로, 손등이 아래로 가게 활을 잡는 주법도 독특합니다.

비올-비올라 다 감바가 가장 널리 쓰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비올라 다 감바의 줄임말로 '비올'을 사용하겠습니다-은 그 모양 뿐만 아니라 음색에 있어서도 독특한 맛을 자랑합니다. 약간은 쨍쨍거리는 것 같고, 듣다보면 바로크 첼로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죠. 음량은 바이올린족 악기들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편으로, 작은 규모의 홀에서 연주해도 울림이 너무 작아서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몇 년 전에 비올 연주자인 파올로 판돌포의 연주회에 갔었는데, 아주 큰 곳도 아니고 호암아트홀에서, 그것도 거의 맨 앞줄에서 연주를 들었는데도 난방장치의 미세한 소음이 신경쓰일 정도였죠-음악의 규모가 커지면서 바이올린족에게 밀려난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비올의 섬세하고 내밀한 음향은 그 자체로 큰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랭 마레(Marin Marais)는 그 음악보다도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작곡가입니다만, 음악사, 특히 프랑스 음악사에 있어 그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비올의 명인 생트 콜롱브(Monsier de Sainte Colombe)에게 비올을 사사받은지 6개월만에 스승을 앞질렀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던 륄리(Jean-Baptiste Lully)에게 작곡을 배운 천재라는 점은 오히려 개인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불과할 정도지요. 마랭 마레는 륄리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식 음악이 판을 치던 프랑스 음악계에 프랑스적인 음악을 부활시키고(륄리는 본래 이탈리아인입니다), 나아가 프랑스 양식을 만개시키며 수많은 수작들을 남겼기 때문에, 마랭 마레는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마랭 마레가 남긴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비올을 위한 곡들은 걸작으로 꼽힙니다. 화려하면서도 실험적인 양식들은 그야말로 귀족적인 동시에 새로운 것을 원하던 당시의 예술계를 만족시키고 남았겠지요. 마치 그 안에 작은 우주를 품고 있는듯한 매력적인 음색과 아름답기 그지없는, 빛처럼 쏟아지는 화려한 악상들은 이 곡이 옛 악기로 연주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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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인 미에네케 반 데어 벨덴은 현재 바로크 음악 전문학교인 암스테르담 스벨링크 음악원의 교수로 있는데, 얼마 전에 내한했던 필립 헤레베헤, 바로크 음악의 거장 톤 쿠프만, 카운터테너이자 지휘자인 르네 야콥스, 포르테피아니스트 요스 판 임머젤 등과 자주 함께 연주하는 실력파입니다.

이 앨범에서 벨덴은 더 없이 부드럽고 섬세한 연주로 이 곡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 냈습니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음색,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한 프레이징은 이 앨범을 아름다운 선율을 내면에서부터 끌어내는 듯한 아름다운 연주로 가득 채워놓았죠.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무게중심이 잘 맞은 연주에서 그가 사용하는 1617년에 제작된 프랑스산 비올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겠지만, 가슴 언저리에서 맴도는 어둑한 홀황은 악기의 힘만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바로크 음악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별달리 할 말도 없게 만드는군요.

쳄발로 반주를 맡은 글렌 윌슨은  미국 출신의 쳄발리스트인데,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연주자입니다. 그래서인지-이것도 좀 편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단히 차분하고 안정된 연주를 들려줍니다. 마랭 마레의 곡들 중간에 루이 쿠프랭(Louis Couperin)의 하프시코드 독주곡이 들어가 있는데, 이 곡들의 연주도 괜찮은 편입니다. 다만 그의 음색은 반주할 때와 독주할 때의 차이가 있어서, 반주시에는 대단히 절제되어 있고 부드럽지만, 독주시의 음색은 조금 모나고 단단한 데가 있어서 약간은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요즘은 원전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옛 음악의 발굴과 복원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감상의 폭이 넓어지고, 옛 소리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입니다. 특히나 원전연주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이 앨범은, 사람들을 원전연주의 세계로 이끌기에 좋은, 작고 아름다운 레코딩으로 칭찬할만 합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비올 연주, 주말 저녁 와인 한잔과 함께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