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 크리스티안 치머만 :: 2007. 2. 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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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르핀 [endorphin]  :

요약 - 동물의 뇌 등에서 추출되는 모르핀과 같은 진통효과를 가지는 물질의 총칭.


본문

이 말은 내인성의 모르핀과 같은 물질인 ‘endogenous morphine’에서 연유한다. 1976년에 동물 뇌 안의 시상하부(視床下部) ·뇌하수체후엽(腦下垂體後葉)에서 잇달아 추출된 모르핀과 같은 펩티드로서, 모르핀을 대표로 하는 마약성 진통약의 수용체인 오피에이트(아편제) 수용체에 특이하게 결합한다. 이 중 아미노산 5개로 이루어지는 펜타펩티드를 인케팔린(진통제)이라 하며, 메티오닌 및 류신-인케팔린이 단리(單離)되어 있어 엔도르핀도 α-, β-, γ-의 3종이 동정(同定)되어 있다. 엔도르핀은 뇌하수체에 존재하여 호르몬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생리적 의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근래에 경혈(뜸자리)을 침으로 자극하여 통증을 잊게 하는 메커니즘의 하나가 엔도르핀에 있음이 증명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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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오류나서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페이지백 누르시려는 분들, 잠깐 기다리세요! 오류가 아닙니다. 다만 뭐랄까, 이상한 데서 글을 끌고 들어가는 어쨌든 음악인의 악취미(?)가 또 시작된 게지요. 시작부터 웬놈의 엔도르핀 얘기냐, 하시겠지만, 게다가 사전적 정의에 좀 어려운 말만 잔뜩 나열되어 있으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 고도 하시겠지만, 얘기는 사실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엔도르핀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기분을 좋게 한다는 거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을 좋게 하고,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통증이 어느 정도 완화된다고 하더군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에 드는 글을 보고, 좋은 그림을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들을 때도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겠지요-의대생 친구에게 한 번 물어보고 써야 하는건지 고민 중입니다-.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때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분이 좋을 때도 역시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띄우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설득력 있지 않습니까? 뭐 어쨌든 그렇다고 치면(?), 오늘 소개하려는 음반은 여러분에게 엔도르핀 같은 역할을 해줄 것 같은(?) 레코딩입니다.

크리스티안 치머만의 터치는 언제나 따끈따끈하고 달착지근합니다. 방금 구워 나온 크로와상처럼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카페모카 위에 얹혀진 휘핑크림처럼 달콤하죠-아니면 그의 수염처럼?-.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데다, 무겁지 않고 발랄합니다. 마치 언제나 신이 나 있는 사람처럼, 그의 레코딩들은 언제 들어도 정말 즐겁게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너무 발랄하다보니 그의 두 번째 쇼팽 녹음은 너무 밝게 연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라벨의 협주곡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는 독특한 곡입니다. 1악장과 3악장은 재즈같은 느낌을 주는데, 2악장은 그에 비해 대단히 고요하고 낭만적인지라 악장 간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마치 햇빛과 달빛처럼 말입니다. 아는 사람에게 1악장을 들려주니 '디즈니 음악 같다'고 하더군요. 날아갈듯한 선율들에 날아갈듯한 분위기, 정말 흥겹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가벼움은 사실 -라벨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규칙적인 프레이징 안에 잘 갈무리되어 있습니다. 음이 분산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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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징들은 치머만의 모나지 않은 연주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날아갈 수도 분산될 수도 있는 음들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잘 잡아두려면, 날카롭거나 너무 가볍지 않은, '궁굴리는' 터치가 필요할 테니까요. 치머만은 기대대로 둥글둥글하게 곡을 잘 풀어갑니다. 다만 페달링이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있는데, 소리가 좀 늘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요. 하지만 치머만의 연주는 정말 유쾌하고 따뜻합니다. 게다가 치머만은 2악장의 그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선율도 아주 잘 소화해낸다죠.

치머만은 지휘자의 덕도 꽤 많이 봤습니다. 진행이 꽤 빠르고, 디즈니 음악처럼 통통 튀는지라, 지휘자와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연주가 될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피에르 불레즈가 누굽니까. 수많은 명반을 남기고, 그 자신이 현대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실 불레즈의 오케스트레이션은 힘이 빠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좀 불만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약간의 흐느적거림이 곡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것 같군요. 거기에 피아노와의 호흡도 찰떡처럼 잘 맞아서 어느 한 쪽이 튀어나온다거나,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잘 조율했으니, 불레즈에게도 많은 공이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19세기 후반부 이후의 곡들은 이해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데다, 화성적 균형을 파괴했기 때문에 음만을 즐기기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인상주의에 반대한 신고전주의 음악도 생소한 맛이 많이 느껴지죠. 하지만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은 '음(音)을 즐기는(樂)' 음악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어려운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이 곡을 즐길 수 있지요. 이 곡은 유쾌합니다. 치머만과 불레즈의 웃음처럼,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면 우린? 즐기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