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멘델스존 교향곡 3, 4번 - 클라우디오 아바도 :: 2007. 2. 15. 11:06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4악장



연주자에 대한 호감도와 연주 자체에 대한 호감도를 종합해서 평가한다면, 제게는 대략 네 가지의 호감 기준 그룹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좋아하는 연주자가 좋은 연주를 들려줄 때입니다. 두 번째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연주자가 좋은 연주를 들려줄 때이고, 세 번째는 좋아하는 연주자가 그저 그런 연주를 들려줄 때이지요. 마지막은, 당연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연주자가 연주마저 제대로 못할 때입니다.

 

제게 있어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연주자 호감도 부문에서 '그저 그런' 순위를 받는 사람입니다. 특히 베를린 필과의 마지막 앨범이라기에 호기심 반, 예의 반-그렇다고 아바도랑 저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요-으로 샀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은 거의 마지막 그룹에 들어갈 만한 앨범이지요. 베를린 필이 맞는지, 아바도는 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앨범은, 당시 병세가 완연했던 아바도의 몸 상태와 비슷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특히 토마스 크바스토프는 어디로 묻혀버린 건지 알 수 없는 교향곡 9번-잊지 않으리-은 평생 잊지 못할 레코딩이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 앨범만은 두 번째 그룹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 그룹에서도 좀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지요. 5년쯤 전이었던가요, 미국에 다녀온 친한 친구가 제 위시 리스트를 봤다며 이 앨범을 내밀더군요. 처음으로 CDP에 걸고 헤드폰을 귀에 걸었을 때의 느낌은 '아이쿠'였습니다. 네이버 사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라고 치면 나오는 내용보다 훨씬 더 좋은 연주였죠.

 

멘델스존의 두 교향곡은 유명합니다. 특히 4번 '이탈리아' 같은 경우엔, 1악장의 주제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누구나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다 아는 곡이고, 교향곡 3번 역시 들어보시면 대강 '아 이 곡이구나'하실 겁니다. 두 곡 모두 멘델스존이 추구하던 고전적인 균형이 잘 잡혀있고, 경쾌하면서도 들뜨지 않고 정감이 잘 형상화된 걸작이지요. 대개 이런 성격을 지닌 곡들이 그렇듯이, 멘델스존의 교향곡 3, 4번도 의외로 연주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레퍼토리입니다. 특히 세밀한 표현이 자주 나오는만큼, 오케스트라를 얼마나 치밀하게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한 승부처라고 할 수 있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바도는 저 네 마리 토끼를 전부 다, 그것도 꽤 잘 잡은 듯합니다. 모든 악장에서 대단한 현악군 조율 능력을 보여주는데다, 단순히 선율만 잘 탄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닌 '분위기'의 창출하며, 곡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 이 앨범에서만큼은 최고라고 해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곡들이다보니, 현악 파트 조율에 강점을 지닌 아바도에게 잘 맞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런지, 교향곡 3번 3악장의 총주부분에서는 현악군과 관악군이 좀 떨떠름하게 맞아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아바도의 전형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도 4악장으로 가면 거의 사라져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두툼하게 조정된 관악기의 푹신한 소리는 정말 일품이죠. 게다가 1악장과 2악장의 그 섬세한 묘사는 약간의 단점 정도는 무시해버려도 될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미세한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다 살려놓았는지, 마치 봄비 내린 뒤의 목초지처럼, 풀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교향곡 4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1악장에서의 관악군은 살짝 쌩뚱맞게 들릴 때도 있지만, 여기서도 살아있는 현악군의 세부묘사는 그 정도 쯤은 눈감아주게 합니다. 2악장도 마찬가지지요. 특히 고요한 가운데서 혼자서 울리는 꾸밈음들은 아주 예민한 감각을 보여주죠. 뭐니뭐니 해도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교향곡 4번의 4악장이 아닌가 합니다. 약간 거친 듯하지만 화려한 아바도의 현악군 리딩이 유감없이 드러난 부분이지요. 이렇게 치열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히고, 선율미나 속도감도 떨어지지 않으며, 그야말로 굉장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보면, 런던 심포니는 아바도가 그들을 아꼈던 것만큼이나 아바도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바도는 그냥 런던 심포니에 머물렀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를린 필로 옮기고 나서는 카라얀의 그림자에 묻혀 이렇다할 앨범도 내지 못하고, 인기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상을 제대로 실현해 보지도 못하고, 악단 사상 최초로 비종신 상임지휘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위암까지 얻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종심의 나이에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여전히 미래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도 그의 앨범을 들으며 교향곡 3번 1악장의 첼로 솔로 선율에 감동하고, 교향곡 4번 4악장에 감탄하는 것을 보면, 제 친구는 선물 하나는 참 제대로 잘 고른 셈이지요. 그간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과연 구독을 하고 있을지-. 더불어 노지휘자의 활동도 기대해 보기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