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베토벤 현악 사중주 op.95 & 59/1 - 아르테미스 사중주단 :: 2007. 2. 15. 11:35
베토벤 현악 사중주 op.95 'Serioso' 1악장(음원은 장소미상의 실황)
이 앨범에 들어있는 곡은 '세리오소(op.95)'와, 유명한 '라주모프스키(op.59/1)'지요. 세리오소는 들어보시면 다들 '아, 이 곡이구나' 하실테지만, 라주모프스키는 피날레 악장이 익숙한 그 곡이 아닙니다. 59/1은 둘로 나뉘어진 59번 작품 중 첫번째 것이지요(우리에게 익숙한 피날레는 59/2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에너지는 단순히 빠르고 강한 악장에서만 느껴지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느린 악장에서도 포스가 팍팍 느껴지죠. 느린 악장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것은 잘못하면 '누울 자리도 안 보고 눕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에너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강약조절도 못하고 힘만 무식하게 센 연주가 되었겠죠.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연주는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딱 필요한 정도만 내보이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이들의 장점입니다. 더구나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의 고요하면서도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폭풍전야를 표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식이지요.
세리오소 4악장에서의 깔끔하면서도 결코 엇나가지 않는 마무리는 이 앨범의 장점이자 아르테미스 사중주단의 연주가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렇게 열정적인 연주를 하면서도, 단 한번도 뾰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하지 않습니다. 고음 처리에서도 분명 소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야 할텐데, 전혀 그런 일이 없이 둥글게 처리가 되죠. 이것 역시 그들이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라주모프스키'의 1악장으로 넘어가면, 아마 이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대충은 느껴지실 겁니다. 세리오소에서는 주로 아래쪽에서 다른 악기들을 받쳐주던 첼로가 전면으로 나서는 거지요. 멜로디선을 따라나가는 첼로소리를 들으면 '아, 여기에서부터 그 힘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들었을 때, 첼로를 받쳐주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그리고 그 때 깨달은 것은, 아르테미스의 에너지는 이들이 지닌 유기적인 구조와 균형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악기에도 중심이 쏠려있지 않은 아름다운 균형, 이런 점이야말로 현악 사중주의 모범이겠지요. 이것만으로도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은 '제자 하나는 확실하게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대단한 수연 뒤에는 물론 또 하나의 공신이 숨어 있으니, 바로 뛰어난 녹음 기술입니다. 오디오나 녹음 기술 쪽으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녹음 기술 덕에 연주자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음의 호흡 하나, 현의 결 하나하나까지 살아있는 것 같은, 현장감이 피부에 와닿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덕분에 녹음실의 열기는 그대로 전달되고, 쿨한 연주를 하는 젊은이(?)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뾰족한 소리-는 배제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아르테미스 사중주단의 멤버들은 솔리스트로도 어느 정도 이름을 얻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이 지금의 사중주단을 오래오래 유지하면서 많은 앨범들을 내 주었으면 합니다. 해마다 더 더워지는 요즘, 달의 여신의 이름을 가진 사중주단의 연주를 들으면서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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