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슈만 교향곡 4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2007. 1. 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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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제가 '대가의 연주를 혹평하는 것은 괴롭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는 약간 다릅니다만, 사람들에게 수십 년간 비판받던 사람의 연주를 호평하는 것 또한 상당히 힘겨운 작업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 개념도 없이 찍찍 휘갈긴 듯한 글이 나돌아다니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서정주의 친일행각은 잘못한 일이지만 그의 문학성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다가 악플이 300개씩 달리는 것과도 같죠. 다행히도 이제 푸르트벵글러가 나치주의자였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이니, 일단 커다란 짐 하나는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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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리뷰에서도 썼던 이야기이지만,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쓰려면 너무 길어질테니, 이번에는 대다수가 지지하는 결론만을 깔끔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푸르트벵글러는 독일 음악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 남았습니다.

글쟁이는 글로 평가받고, 그림쟁이는 그림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처럼, 음악쟁이-'쟁이'라는 표현에는 비하의 의미보다는 한국적인 해학이 담겨 있습니다-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푸르트벵글러가 거의 반세기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은 그만큼 그의 연주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는 뜻일 겁니다. 마치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끊임없이 욕을 먹으면서도 그의 시가 지닌 마력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요-그래서 저는 서정주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그의 시에 탄복하곤 합니다-.

'마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말인데,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법 같습니다. 아마도 다들 영화 '벤허'를 보셨을 것이고, 예수님이 지쳐 쓰러진 주인공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도 보셨을 겁니다. 영화에서는 한 번도 예수님의 얼굴이 나오지 않죠. 하지만 그 뒷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전율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지나친 것이겠지만,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마치 '벤허'에 나오는 예수님의 뒷모습처럼, 알 수 없는 기운을 무럭무럭 피워냅니다. 좀 지나친 비유였다면, 노이슈반슈타인이나 호엔슈반가우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 아니면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전율 정도와 비교한다면 적당할까요?

카라얀의 연주를 들으면서 감동하는 사람들도 많고 많지만,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의 연주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카라얀의 연주가 단순히 조련이 잘 된, 어떻게 본다면 그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Orchestral Box'라는 기계처럼 느껴진다면,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연주 자체가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율미나 오케스트라의 훈련 정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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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그의 연주에서는 악기들이 그냥 악보를 따라 잘 굴러다니는 것이 아니라, 곡의 모든 부분과 오케스트라의 모든 부분이 각자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훈련과 조련사의 치밀한 조련 때문이겠지요. 여기까지는 카라얀도 훌륭합니다. 솔직히 그 정도의 연주도 대단하긴 대단하죠. 각 파트별로 대단한 기술을 보여주긴 하니까요. 하지만 악보를 따라가는 것과 악보를 해석하는 것의 차이는 조련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푸르트벵글러는 각자 생명력을 지닌 파트들은 한 데로 모아 그것을 하나의 유기체로 구성합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마치 각각 하나의 악기만 가지고 연주한 것 같으면서도 기계적이지 않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게다가 생명력을 지닌듯한 유기적인 연주에, 엄청난 완급조절 능력까지 보너스로 따라옵니다. 3악장의 묵직하면서도 칼로 베어내는 듯한 날카로움, 그리고 4악장의 놀라운 호흡조절과 묘사력,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처럼 휘몰아나가는 전개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이 움직이는 그림이 떠오릅니다-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작품이 바로 사람이죠-. 그 자체로 이해도 어렵고 모사도 어려운 마법인, 사람.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그래서 수십 번을 들어도 저에게 들을 때마다 대단한 전율을 안겨다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항상 서두는 길고 본문은 별 내용도 없이 짧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군요. 읽어보니까 요지는 '푸르트벵글러 최고'라는 단순한 내용 달랑 하나입니다. 변명이 될 지 모르겠으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그만큼 직접 체험해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이 음반은 물론 푸르트벵글러의 베스트 앨범은 아닙니다만, 오디오에 CD를 걸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여러분은 헤어나기 어려운 그의 마법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 독일 음악의 정신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