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 2번 - 하워드 셸리 :: 2007. 1. 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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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다른 곡들에 비해서는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것과 비교하면 이건 뭐 '대기업의 부도어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기가 없죠. 음반으로도 필수 레퍼토리가 아닌데다 심지어는 라디오에서 듣기도 어렵습니다. 원인은 대략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임팩트 있는 멜로디 라인이 없고, 전형적인 낭만시대 피아노 협주곡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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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시대의 작곡가들은 대개가 훌륭한 연주자들이었고, 이들은 자신의 훌륭한 테크닉을 자랑하기 위해 기교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협주곡들을 작곡했습니다.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자신보다 더 대단한 피아니스트를 누나로 둔 멘델스존이 상당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곡을 쓴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대개 빠르고 화려한 템포와 멜로디라인을 갖춘 낭만시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바로 그러한 특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빠르게 어필했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습니다. 그래서 낭만시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우리에게는 거의 잊혀진 악곡들이 되어버렸지요.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역시 '멘델스존표'가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 적은 레코딩만이 있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을, 그런 곡입니다.

협주곡 1번은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와 닮은 꼴입니다. 단 몇 마디만이 진행된 뒤에 바로 솔로 파트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오죠. 거의 돌진하는 듯한 1악장이 숨가쁘게 지나가면 갑작스레 고요가 찾아오고, 그 조용함을 틈타 2악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차분한 2악장이 끝나면 역시 갑작스러운 전개가 흐르는 3악장이, 역시 대단한 속도로 뛰쳐 나옵니다. 한 마디로 이 곡의 독주자와 오케스트라는 모두 뛰어난 테크닉을 지녀야 하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 협주곡 2번은 테크닉에 크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물론 테크닉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은 협주곡 1번과 마찬가지이지만, 오히려 테크닉보다는 조용한 가운데서 나오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곡입니다. 격정적인 부분도 적고, 1번에 비하자면 굉장히 조용한 곡이지요.

하워드 셸리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레코딩으로 유명하고, 그만큼 테크닉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셸리의 연주가 협주곡 1번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힘도 있고, 테크닉도 뛰어나기 때문에 2번보다는 1번에 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지요.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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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서두는 장황하고 본 내용은 별 것 없는 제 글쓰기의 전통에 맞추어 결론을 말하자면, 이 앨범은 상당히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셸리의 뛰어난 테크닉은 어디 가고 1번 1악장에서는 내내 곡에 밀리는 느낌입니다. 손가락이 반의 반 정도 밀리는 느낌 때문에 굉장히 답답하군요-박자가 느리지도 않은데-. 게다가 포르테 피아노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주 또랑또랑한 소리를 내는 셸리의 터치는 오히려 '밀리는' 느낌과 맞물려 답답함을 가중시킵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느낌을 주는 1번 1악장에서 이렇게 답답하면 곡의 전개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즈의 반주 역시 셸리의 연주와 어울린다고 할 수 없고, 연주의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느낌입니다. 3악장에서 셸리는 그나마 괜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만 반주와 독주의 간격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협주곡 2번의 연주는 1번에 비해 상당히 괜찮습니다. 우선은 약간 속이 쓰린듯한 오케스트라의 늘어짐이 곡에 그런대로 잘 어울리고, 셸리의 음색도 잘 맞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역시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데는 실패하는 느낌이, 마치 스토리라인은 장황하게 벌려놨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한 만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역시 오케스트라의 연주 자체가 곡에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멘델스존의 빠른 협주곡들을 연주하기에, 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즈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이도 저도 아니고 너무 어중간하게 둔중합니다. 셸리의 난조도 이에 한 몫 했고요-게다가 지휘자가 셸리 자신이니까 책임이 크군요-.

제가 이렇게 나쁘게 써놓긴 했습니다만, 사실 셸리의 멘델스존 협주곡 레코딩은 꽤 호평을 받은 앨범입니다. 아마 스티븐 허프의 연주와 비교하면서 들어서 더 안 좋게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구입하면서 모셸레스의 피아노 협주곡 CD도 같이 샀는데, 희한하게 두 앨범 모두 그다지 대단한 임팩트는 없군요. 낭만시대 피아노 협주곡들의 숙명이자 한계라고 하면 지나친 모독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