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 야노스 슈타커 :: 2007. 4. 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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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음원은 1988년 도쿄 리사이틀 실황)

 




좀 웃기기도 하고 실현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어쨌든 음악인으로서 인생의 목표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연주해 보는 일입니다. 물론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주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소망은 아닙니다만, 혼자서 연습해서 만족스럽게 연주해 보는 것이 제 미래의 작은 꿈(그다지 작아보이지는 않는군요)일 만큼, 이 곡은 제 머리 속에 꽤 깊게 박혀 있습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1악장 첫 부분의 레치타티보가 주는 인상은 아주 강렬했거든요.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이자 민속음악학자인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는 사실 접근하기에 그렇게 편한 사람은 아닙니다. 우선 작곡가로서 코다이의 업적은 우리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일반에 잘 알려진 곡이 이 곡 정도이고-저도 그의 오페라 하리 야노쉬나 피아노 협주곡은 CD는 보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작곡가보다는 헝가리 민속음악의 연구와 체계화로 그 업적이 많이 기려지곤 합니다. 게다가 그가 활동한 시대는 우리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음악들이 튀어나온 시대이고, 그 자신의 음악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니, 저처럼 어쨌든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어쨌든 좀 이해하기 어려운 작곡가입니다.

 

야노스 슈타커 역시, 어떻게 보면 우리와 친근한 사람이지만-부다페스트 음악원 시절 안익태와 동문수학했고, 안익태에게서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사는 건 어떠냐'는 제의도 받았다고 합니다. 또 한국에도 일곱 차례나 내한해서 공연을 할 정도로 한국과 꽤 깊은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편하게 다가오는 연주자는 아닙니다. 우선 슈타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볼까요?

 

1924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슈타커는 일곱 살에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입학하고 열두 살에 리사이틀을 열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45~46년에는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를 맡았고, 잠시 3중주 활동을 하다가 1948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전세계를 경악에 빠뜨렸지요.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댈러스 심포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등의 수석 첼리스트를 역임했고, 195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솔리스트로 나서는 많은 연주자들과는 달리 오케스트라 경험이 상당한 편이지요.

 

독주자로서의 활동은 상당한 호평을 받는 편입니다. 우선 '코다이=슈타커'라는 공식이 절대 과장이 아닌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앨범은 이미 바흐에서 카잘스가 지니는 위상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두 차례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앨범도 팬층이 상당히 두텁고,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도 나름의 인기를 얻고 있지요. 인디애나 음대의 교수로서 후진 양성에도 힘써서 전세계에 제자들이 퍼져 있고, 악보의 교정과 편찬, 교본의 편찬 등에도 상당한 업적을 쌓아 슈타커판 악보도 세계적으로 통용된다고 합니다(어떻게 보면 코다이와 닮은 면이 있지요?)

 

하지만 슈타커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어렵습니다. 기교적으로 어려운 건(일단 듣기만 해도 어렵죠) 둘째치고, 음악 자체가 꽤 난해한 편입니다. 그야말로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험성이 아주 제대로 표출되어 있는 느낌이지요. 대담한 반음계의 사용(4번과 3번줄은 아예 반음계 내려서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과 5옥타브를 넘나드는 과감한 악상의 전개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이해가 어려운데, 여기에 헝가리 민속 음악의 가락이 더해지니 어찌 보면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첼로 한 대로 관현악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고도의 테크닉이 사용되다 보니, 이 곡은 연주자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꽤나 괴로운 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연주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 슈타커의 손에 들어가니까, 신기하게도 감동적이더란 말입니다. 곡 특유의 정열적이고 박진감 넘치면서도, 난해한 동시에 명쾌한 특성을 술술 잘도 풀어가더라는 얘기지요. 낮은 음은 낮은 음대로 낮은 음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다 뿜어내는 것 같고, 높은 음은 높은 음대로 그 높이를 다 드러내는 듯한, 힘이 넘치는 보잉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열정에 가득 찬 연주는 이 곡이 대단한 난곡이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거침이 없습니다.

 

이 연주가 놀라운 것은 비단 슈타커의 연주가 그냥 뛰어나서는 아닙니다. 슈타커는 코다이와는 반대로 정확하게 균형잡힌 바흐의 앨범에서도 대단히 좋은-조금은 특이한-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저는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곡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둘 중 하나만 잘 해도 대단할텐데, 거의 반대되는 두 곡 모두에서 하나는 풍부하고 여유로운 연주를, 하나는 포스가 넘치는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거의 '엄마 친구 아들'입니다-.

 

하긴 슈타커의 이인(異人)적 풍모를 생각해 보면, 그가 두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진에서도 좀 나타나지만, 그는 어떨 때는 대단히 장난스럽고 어떨 때는 대단히 진지한 사람이고, 그건 연주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슈타커의 연주에 반대하는 사람도 꽤 많고, 바흐 앨범 역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되고, 연주가 즉물적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만큼은, 슈타커의 연주는 즉물적인 것을 뛰어넘어 직관적입니다. 마치 악보를 보고 하는 연주가 아니라 자신이 첼로를 켜며 음표 하나하나를 던져 악보를 그려내는 듯한 연주거든요. 그래서 그의 연주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뇌리에 와서 각인됩니다. 메인 곡과 커플링으로 담긴 곡들 모두 뛰어난, 아주 좋은 앨범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 로스트로포비치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그러고보니 슈타커도 어느덧 80을 훌쩍 넘긴 영감님이군요. 이제 나이가 많아서 활발한 연주활동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계속 그 괄괄한 성미며 특이한-어쩌면 특별한- 연주를 보여주고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영감님, 오래오래 사세요(왠지 '야 이놈아! 너나 잘 해!'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