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세입자 :: 2009. 4. 14. 22:44







소생의 집 앞에는 세입자가 하나 살고 있는데, 물론 세입자라고 하기엔 아무도 거기 살라고 허락을 한 적도 없고 그도 허락을 구한 적이 없으니 뭔가 허전하긴 합니다마는, 그래도 듣자하니 和蘭이라는 나라에서는 쫓겨나지 않고 1년을 살면 그 집에 그대로 살 수 있다니 어쩌면 그 화란이라는 나라에서 와서 알게 모르게 1년을 넘겨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에 이 세입자, 세입자도 아닌데 자꾸 세입자라고 하려니 이상하니까 이제는 뭐라고 할까, 그래 묘선생이라고 부르면 적당할 것 같은 세입자는 밤이나 낮이나 다른 곳도 아니고 마당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데 묘하게도 눈에 잘 띄지는 않습디다. 볕이 좋은 날이면 가끔 마당 한가운데 늘어져서 낮잠을 주무시는데 하필이면 소생이 눈치없게 사진을 박겠답시고 다가갔지 뭡니까. 그래 따끈한 아랫목에서마냥 망중한을 즐기는 묘선생에게 몰래 다가가 사진을 박으려니, 어떻게 알았는지 부스스 일어나서는 '아, 그 사람 참' 하는 눈초리로 한 번 째려보고는 고개를 홱, 돌려 도도하게 걸어가는 걸 보니 그 누구냐, 디오니소스인지 디오게네스인지 아무튼 어느 쪽이라도 왠지 술이랑 친할 것 같은 이름의 친구가 알렉산드로스 앞에서 이랬겠구나 싶지 않겠습니까.

에잉, 하는 꼬랑지가 울타리를 넘어 다른 자리를 타고 넘는데, 아, 사람은 쉽게 못 넘어다닐 울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다니는 묘선생의 모습을 보니, 애초에 누가 누구를 막으며, 누가 누구의 것을 사고 팔며, 누가 누구의 것을 가진다고 하는 것인지, 무심히 따스한 봄볕이 구름 사이를 누벼 나리는 마른 마당 한가운데서, 소생은 그저 한없이 누군가에게 빚을 진 기분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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