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어루만지다 :: 2009. 3. 23. 22:50



대화: Zeiss Ikon + C Sonnar 50mm - Mitsubishi Super MX100 / 전북 완주군 경천면, 2009



불도 별로 없는 시골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로 채우며 한 삼십분 남짓 걸었을까, 인기척에 개 짖는 소리만 가득한 오래된 버스정류소 쯤에서 당신은 입김을 호호 내어불며 몸을 떨었고 나는 가방에서 도타운 코끼리 티셔츠를 꺼내 당신의 목에 둘러주었다. 한기는 금새 한 발짝 물러섰고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타박이며 길을 걸었다.

이제는 불보다 어둠이 더 많은 길목을 지나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밤을 벗삼고 구름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쯤 낡은 가로등 하나 저만치 서서 지붕께 눈길 주며 가만가만 흙담을 어루만지는 모습에 우리는 잠시 멈춰 오랜만에 만나는 불빛에 몸을 담그며 누긋한 말들을 주고받았고 나는 문득 이제부터 가로등 혼자서 어둠을 밝혀 마을에 스미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어둠 뿐인 길목을 아버지의 머리처럼 희끗한 자전거 전조등-나는 왠지 당신과 불 없는 밤길을 걷게 될 것 같아 미리부터 자전거에서 전조등을 빼내 가져갔었다-으로 살포시 밝히며 당신과 나는 손을 꼭 붙잡아 걸었고 달도 없는 그 밤길을 별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곡길을 걸어 계단을 올라 바윗길을 넘어 한동안 걸어가자 저만치 노오란 불빛이 갈증을 느끼던 눈을 적셔주었고 우리는 얼른 걸어 이내 나무 한 그루 마주선 해우소에 닿았다. 알전구 하나 몸을 태워 양철문과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며 우리에게 위로를 건넸다. 근심걱정일랑 저 어둠 속에 다 털어두고 가시게.



해우소: Zeiss Ikon + C Sonnar 50mm - Mitsubishi Super MX100 /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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