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흩어진다 :: 2009. 1. 5. 02:51




시선: Zeiss Ikon + C Sonnar 50mm - Rollei Retro 100 / 동대문운동장, 2007



애초에 나는 동대문이니 남대문이니 하는 곳에 벌어진 펼쳐진 혹은 널려진 그런 시장을 잘 안다거나 잘 간다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이 데려간 날도 당연하지만 딱히 풍물시장이 궁금해서 가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혼자서라면 돌아다니는 게 귀찮았을 곳도 같이 다닌다면 좋았기 때문이다-당신이 간혹 가다 사주던 아이스크림이 좋아서였다는 것도 약간의 이유이긴 했다-.

파장을 앞둔 동대문 풍물시장은 파장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철거가 얼마 안 남아서인지 바짝 마른 햇살에 늘어진 누런 수세미 잎마냥 그렇게 조용하고 굼뜨고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는 파장 와중에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고 당신은 내게 자전거 전조등과 김이 하얗게 오르던 잔치국수를 사줬었다. 조을며 넘어가던 여름저녁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흩어지는 오뎅-일본어의 잔재고 뭐고 일단 어묵보다 더 질감이 잘 느껴지는 말이다-국물의 김을 쐬며 앉아 있는 고양이 인형은 우리와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맛난 잔치국수 말아 주시던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우리가 다시 동대문에 갔을 때는 잔치국수와 오뎅 국물의 하얀 김 대신 포크레인이 뿜어내는 무거운 무더운 무서운 검은 연기만 구름 앞에 흩어지더라. 나와 당신과 우리가 함께 보낸 날들도 언젠가 그렇게 하얗게 혹은 검게 흩어지겠지만 그때에도 그 애매하던 아이스크림 맛과 좀 약하던 전조등 불빛과 고양이 인형과 눈 마주치며 먹었던 맛있는 잔치국수 맛은 아마도 이 사진처럼 오래 기억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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