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 클라라 하스킬 :: 2008. 12. 21. 18: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대에 나타난 피아니스트는 병색이 완연한,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고, 머리는 타버린 듯한 잿빛에, 앞으로 굽어버린 어깨는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청중들은 '저래서야 어디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을 지도 모릅니다. 걷는 것조차 힘에 겨워 보이는 이 '할머니'는 그러나, 놀랍게도 피아노에 앉자마자 언제 아팠냐는 듯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사람이 이런 연주를 하다니, 청중들은 아마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 피아니스트는 정말로 마법을 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 초반기까지, 하스킬(1895-1960)은 신에게 축복받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여섯 살 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한 악장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외워서 치더니, 다시 그것을 변조해서 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죠. 10살 때 이미 솔로 데뷔를 했으며, 이듬해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 알프레드 코르토와 가브리엘 포레 같은 당대 최고의 선생들에게 배웠고, 불과 4년 뒤에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습니다. 이렇듯 신이 내린 재능에 아름답고 지적인 외모까지 더해졌으니, 하스킬의 앞날엔 파란 하늘만이 펼쳐질 것 같았지요.

그러나 하스킬은 18세가 되던 1913년부터 1920년까지 무려 8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창 인기가 오르던 시기에 갑자기 사라진 것이지요. 원인은 바로 세포와 세포가 서로 붙은 채로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불치병, 세포경화증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발병한지 5년 뒤에는 어머니까지 사망하는 등, 그에게 병을 치료하기 위한 8년 동안은 아마도 지옥 같은 시기였을 것입니다.

1921년, 8년 간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다시 무대에 오른 하스킬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26세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후유증으로 인해 머리카락은 잿빛으로 바랬고, 등과 어깨가 굽어 곱추와 같은 모습이었으며, 근력도 예전 같지 못했고 당연히, 전과 같은 난곡들을 연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스킬에게는 8년 전과 다름 없는 재능과, 8년 전보다 더욱 강렬해진 열정이 있었습니다.

유럽무대에서의 연주 재개를 시작으로 1924년 북미에서, 1926년에는 영국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1927년에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이자이와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병마에도 지지 않고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하스킬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또한 많은 동료 연주자들에게도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훌륭한 동료로 인정받았습니다.

세포경화증이 신이 내린 첫 번째 형벌이었다면, 제 2차 세계대전은 두 번째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유대인이었던 하스킬에게 나치의 인종청소는 재앙과 같았고, 또 다시 연주생활을 접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고된 피난의 세월 동안 그는 또다시 목숨을 걸고 병마와 싸워야 했고, 몇 년간 실명의 위기와 종양, 뇌졸중과 같은 무거운 병들을 이겨내며 오뚝이처럼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2년 뒤인 1947년, 그의 나이 52세 되던 해, 마침내 생애 첫 레코딩을 제작했으며, 이후 남은 13년의 만년기 동안 다시금 왕성한 연주와 녹음 활동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스위스 라디오 방송국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이 레코딩은 바로 하스킬이 사망하기 불과 석 달 전에 녹음한, 그의 마지막 실황 앨범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때의 하스킬은 지병과 노환으로 거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연주는 마치 마법과 같은 힘을 지녔습니다. 하스킬의 음색은 고통을 승화시킨듯 투명하고, 터치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해석은 탁월합니다. 특히 1악장 마지막의, 그 슬프고 아름다운 짤막한 변주는, 차분함과 명료함에 오히려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그 자신 역시 77세의 노지휘자였던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의 연주 역시 놀랍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그런 와중에도 부드럽게 움직이고, 자칫 침중해질 수 있는 베토벤의 분위기를 좀더 세련되게 버무리고 맛깔나게 띄워놓습니다. 게다가 묻히기 쉬운 저음역의 현악기들이 내는 소리도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아, -전체적으로 산만할 수도 있지만- 그 어느 레코딩보다도 따스하고 둥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듣는 이를 감싸줍니다. 특히 2악장 초반의 웅혼한 울림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스킬도 물론, 다른 노령의 연주자들처럼, 몇 차례 미스터치를 범하곤 합니다. 특히 1악장 초반에는 앙세르메가 템포를 잘 맞춰주었기에 망정이지, 연주 자체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을 큰 실수가 나오지요. 하지만 하스킬의 연주에는 단순히 만년의 연주자의 작품이라고 해서 존경받는 것이 아닌, '피아니스트'로서의 불꽃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오히려 그 마지막을 더 강렬하게 장식하는 탁월함이 살아 있습니다.

스위스 몽트뢰에서 있었던 이 연주의 3개월 뒤, 하스킬은 브뤼셀 역의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다음 날인 12월 7일,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인생은 3분의 2가 병마와의 싸움이었고, 항상 고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하스킬은 언제나 생에 대한 애정과 따스함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