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감상에의 강요 :: 2007. 1. 29. 12:18

저는 세상에 절대적이거나 완전한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나 완전자를 표방하는 모 종교의 신을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성격상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외에 여러가지 문제도 있습니다만-. 유일하신 그 분뿐만 아니라, 저는 초월적이거나 절대적인, 그것이 어떤 종교가 됐건, '신'이라는 분들에게는 언제나 반감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는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인간이죠. 제가 듣는 음악의 범위에서 미사곡이나 수난곡이 쏙 빠져 있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불경스럽고 성스럽지 못한 인간이 종교학과라니 웃을 일입니다.

서두에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절대적이라거나 최고의 그 무엇을 대체로 거부하는 제 속성은 음악에도 적용됩니다-이거 사실은 열등감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누구의 무슨 곡 몇 번은 이 연주자가 언제 녹음한 것이 무조건 최고라거나, 이 연주자는 작곡가 누구의 스페셜리스트라든가 하는 세평이 있으면 일단 비판적으로 듣고 봅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스페셜리스트의 연주인데 혹독한 평가를 내릴 때도 있지요-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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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도 별로 좋은 자세로 보이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이렇게 '감상에의 강요'라는 제목으로 발행호수 한 번을 할애하는 것은,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감상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할 분도 있을 겁니다만, 예,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감상과 감수성을 강요당할 위협에 처해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로부터든, 위협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참으로 교묘하게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말 신문의 TV 방송표를 훑다보면 언제나 꽤 큰 지면을 할애해서 영화 두개 정도를 소개하며 별점을 매겨놓은 것, 다들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오늘자 동아일보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치로 각각 두개씩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군요. 일요일에는 '빌리 엘리엇'과 '악의 손길'이 올라와 있습니다. 빌리 엘리엇은 ★★★☆, 악의 손길은 ★★★★★을 받았군요. 칭찬을 늘어놓은 빌리 엘리엇에 달랑 별 세개 반을 주고, 무슨 영화인지 알지도 못하는 옛날 영화인 악의 손길은 달랑 몇 줄짜리 소개만 해놓고는 만점을 줬습니다. 그럼 우리는 당연히 '저 영화는 별 세개 반짜리, 저 영화는 만점짜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습게도 별 감흥도 못 느꼈던 한국영화가 별 네개를 받는 일도 많습니다.

별점 평가로부터 나오는 감상에의 강요는 비단 신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에도 무수한 별점들이 떠다니죠. 저도 한 때는 별점으로 음반을 평가한 적이 있었고, 이 페이퍼를 시작할 때도 처음엔 별점을 매길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영화 얘기를 매조지해볼까요? 많은 분들이 듀나라는 사람의 '영화낙서판'이라는 곳을 가보셨거나, 그가 내놓은 영화에 대한 책을 보셨을 겁니다. 이 사람, 일반적인 평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다시 말하면 독창적인 관점의 평가를 내리곤 하죠. 그런데 별점 평가에 대해 '투덜거리'던 이 사람이, 별점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별점 평가를 한다는 문제 자체를 떠나서, 듀나가 만점을 주는 영화는 대부분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들, 즉 아주 오래된 예술영화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이 사람은 별 다섯개 주는 일이 거의 없으니 네개를 만점으로 치죠-. 한 번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옛날 영화들에 별 네개를 줬고, 별 다섯 개짜리 영화는 과연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돕니다. 게다가 그나마 별 네개를 준 최근 영화도 잘 알려진 영화는 거의 없습니다. E.T.는 대부분 보셨겠지만,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이나 로버트 알트만의 '고스포드 파크' 보신 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군요. 이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한 1900년쯤에 태어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좀 더 친절했으면 좋았을텐데요. 전문가들한테 하는 얘기가 아니라면 말이죠.

어찌됐든, 별점 평가는 위험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 불과한 평론을 더구나 기호 몇개로 압축시켜놓은 것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으니까요. 저에게는 별 한개 반짜리 영화였던 오션스 일레븐 2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 네개짜리 영화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제가 침을 튀겨가며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은, 저 자신이 감상에의 강요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주 가당찮게 말이죠. 제가 고 2 때, 그러니까 벌써 한 7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때 저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논술과외를 받았는데, 선생님은 서울대를 나왔다는-과학철학을 전공했던 것 같은- 30대 중반의 여자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오지랖이 넓어서 직업은 영화번역-평론 정도였던 것 같고, 음악을 굉장히 광범위하게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클래식도 그렇구요. 저는 그 때 아직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듣기 이전이었고, 이론 상으로나 감상적인 면으로나 부족했으며 논리적인 반박을 하기에는 지식도 모자른데다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수업은 단순히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논술과외가 아니라, 사람의 속을 채워서 글이 우러나오게 하려는, 취지 자체는 굉장히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업 때는 교재를 발제하고, 음악을 듣고, 그림도 그려보고, 영화도 보는 형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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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선생님이, 자신이 지닌 지식을 감당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던건지, 매사에 다른 사람들을 깔보았다는 겁니다. 친구가 가져온 패닉의 노래를 듣고는 '누구 따라하는 것 같다'고 하거나, 제가 그 때 즐겨듣던 씨크릿 가든의 음악을 듣고는 '전부 다 표절이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죠-물론 앙드레 가뇽과 아주 비슷한 구절이 있긴 합니다-. 심지어는 제가 '요새는 허무주의에 빠진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그 때 한창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였죠;;- '허무주의라는 말은 허무주의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쓸 수 있는 말이다'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저 말에 동의 하시는지요.

별 것 아닌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참 멀리도 돌아왔습니다. 아무튼 저 선생님이 어느날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에 알프레드 브렌델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CD를 가져왔습니다. 둘 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였고, 그 날 들은 곡은 '템페스트' 3악장이었죠. 사실 저는 그 때 두 사람의 연주를 듣고 그다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고, 누가 더 잘 하나 하는 건 생각도 안 했습니다-경험이 일천한 제가 기준으로 삼을 만한 건 테크닉 밖에 없었는데 어려운 곡도 아니었죠-. 그런데 이 선생님, '누구의 연주가 더 좋냐'고 묻는 겁니다. 저는 잘 모르겠다고 했죠. 사실 잘 모르겠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흥분하면서 '아니 당연히 브렌델이 훨씬 좋은 거 아니냐'면서 '리히터보다 브렌델이 훨씬 좋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무서운 일입니다. 클래식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브렌델>리히터'라는 공식을 심어버리다니요. 심지어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아니 템페스트 전악장조차도 아닌 달랑 3악장만 듣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상에의 강요입니다. 그 때 마침 클래식에 점점 빠져들어가서 미친듯이 CD를 사모았고, 또 브렌델과 리히터의 베토벤 소나타를 모두 들어보았습니다만, 제게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브렌델보다 오히려 리히터가 더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브렌델의 레코딩은 몇 개 빼고는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죠.

평론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강요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겁니다. 객석이나 그라모폰 같은 잡지에 실린 빨간색 별점평가나, 인터넷에 떠다니는 별점평가들 모두, 우리의 감상을 멋대로 뒤틀어놓을 수 있는 위협입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이 페이퍼 역시 여러분에게 위협입니다. 만약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서 음반을 사고, 듣게 되신다면, 제 페이퍼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마음을 비운 채로 듣기를 권하겠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 모르는 사람의 개인적인 감상이 오히려 더 해로운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발 부탁드리건대, 조금 알게 되었다고 다른 사람의 감상을 깔아뭉개지 말아주세요. 그건, 분명히 폭력입니다. 그리고 저는 언제나, 제가 쓰는 이 되먹지 못한 페이퍼가 여러분에게 폭력이 되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마치 옛일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았군요. 좀더 간결하게 내용을 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냥, 이 난잡한 글을 읽고 여러분이 '클래식 음악 감상'이라는 취미의 세계에서, 제가 여러분께 강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감상에의 강요를 거부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강요당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