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 미샤 마이스키 :: 2007. 1. 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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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저는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왜 그렇게 인기가 좋은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넘치는 감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놀라운 테크닉을 지닌 것도 아니거든요.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의 연주가 무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썽이나 흠 잡을 것이 없다'는 사전의 풀이 그대로, '무난하다'는 말은 대체로 좋은 뜻을 지니고 있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잘못도 없지만 특별히 좋을 것도 없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요. 마이스키의 연주는 정말로 무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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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퍼를 쓰면서 참 욕 먹을 평가를 많이 하고 있어서 혹평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지만-욕 안 먹어도 혹평하는 것은 절대로 즐거운 작업이 아니지요-, 마이스키는 이 앨범에서 아쉽게도 무난한 연주마저도 들려주지 못합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와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Sonate fur Arpeggione und Klavier)'는 원래 첼로를 위한 곡이 아닙니다-제목에서 이미 드러나죠?-. 아르페지오네는 사진처럼 6현으로 된 악기인데, 생긴 것은 마치 기타나 류트와 비슷하지만 연주방법은 첼로처럼 활을 씁니다. 슈베르트의 시대에 발명되었지만 발명되고 얼마 안 가서 사용되지 않게 되어 금방 잊혀져버렸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작품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이 곡이 거의 유일하죠. 현의 구성이 첼로와 다른 데다 고음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곡을 첼로로 연주하는 데는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테크닉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이스키의 연주는 좀,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저기서 운지가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이 눈에 띄고-그것도 찾기에 아주 쉽게-, 곡을 따라가지 못해 허덕거리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연습이 덜 되거나 잠이 덜 깬듯한 연주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마이스키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굉장히 죄송하군요-.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운 음색마저도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연주에서는 그래도 부드러운 음색이 향이 좋은 커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만 이 앨범에서는 도무지 그런 면은 찾아볼 수가 없군요. 어제 라디오에서 플로렌스 젠킨스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꾸 깽깽거리면서 활이 현에 제대로 마찰되지 못하는 소리가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저음을 낼 때도 그저 가볍고 들떠 있는 소리만 날 뿐이지 좋은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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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연주한 다리아 호보라는 그런대로 칭찬 받을만합니다. 그의 연주는 정확하면서도 영롱한 소리를 들려주거든요. 깔끔한 맛이 있는 브리튼의 연주와는 굉장히 다른 연주이지요. 앞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첼로가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을 잘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달링 때문인지 녹음장소의 문제인지, 잔향이 약간 길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오히려 피아노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괜찮은 연주입니다.

앨범의 맨 앞을 장식하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이처럼 실망을 금치 못할 정도이긴 합니다만, 그 뒤에 실려있는 무언가 연주는 듣기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마이스키의 무난함이 살아 있습니다-무난함이 살아있다니 참 이상한 표현이군요-. 음색은 여전히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앞쪽에 비하면 굉장히 무난한 수준입니다.

저에게는 그저 무난한 연주자 정도로 생각되는 마이스키는 이 앨범에서 그 무난함마저도 채우지 못하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그다지 아쉬울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이유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사주신 CD가 마이스키의 레코딩이었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