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 미하일 플레트뇨프 :: 2007. 1. 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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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길고 긴 세월 동안의 대립은 이제 자본주의의 승리로 그 막을 내리려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철권통치를 철폐하고 자본주의로 돌아섰으며, 지구상에 남은 공산국가는 이제 몇 안됩니다. 80여년 간에 걸친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 내지는 공산정권의 몰락은, 좀 더 긴 기간 동안 자본주의가 내어보인 수많은 폐해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공산주의에 대해 자본주의가 지니는 상대적인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우수성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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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들을 바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분명히 장점이 있거든요. 장점이 없다면 80년 동안이나 세계의 반쪽을 지배하는 건 불가능했겠죠. 이견이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역시 '남녀 차별이 없다'는 것과 '문화 산업에 대한 지원'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정부는 예술가들에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만한 지원을 해주었고, 대중들에게 예술을 장려했으며, 그 결과로 어느 도시에서나 매일 저녁 공연이 열렸지요. 물론 체제에 대한 비판은 일체 금지되었습니다만, 그 이외의 예술활동에는 상당한 지원이 뒤따랐습니다. 아마도 공산 치하에 놓여있던 시기가 현대 러시아 예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그 황금기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고, 닫힌 막 뒤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에 설립되었습니다. 항상 풍족한 지원 속에서 연주에만 전념하던 러시아의 우수한 음악인들은 갑작스레 밀어닥친 체제의 해체라는 파도에 떠밀려 자본주의 국가로 망명하는 일이 많았죠. 수많은 인재들이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다보니 러시아 음악계는 몰락해갔고, 이러한 퇴조는 예전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웅 칭호를 받으며 어려움 없이 살던 예술가들과 그 유족들이 지금은 난방도 안되는 추운 아파트에서 병마와 싸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요.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해 조국을 등지는 인재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러시아에 붙들어둔 사람이 바로 피아니스트인 미하일 플레트뇨프입니다. 진작에 피아니스트로서 입신하여 명성이 높았던 플레트뇨프는 몇 번의 콩쿨에서 얻은 상금과 해외 투어에서 모은 연주비로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죠. 그리고 재능있는 동료들을 끌어모았고, 자신이 지휘를 했으며, 데뷔하자마자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으로 떠올랐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플레트뇨프는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폴리니를 연상시키는 그의 차가운 터치와 약간은 건조한듯한 해석 때문이지요. 그래서 피아니스트 플레트뇨프를 언급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반응은 양 극단에 서 있곤 하죠. 하지만 지휘자 플레트뇨프를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한 마디로 만족하곤 합니다. '천재 중의 천재.'

천재 지휘자(피아니스트로서 훨씬 이전에 데뷔하긴 했지만)와 단원 한 명 한 명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맞먹는 실력을 지녔다는 RNO가 함께한 이 음반은, 단언하건대 최고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력좋은 연주자들만 있으니 당연히 좋은 연주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연주자들의 실력이 좋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연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베를린 필의 연주라도 지휘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음악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이지요. 레알 마드리드가 아무리 지구방위대라도 언제나 선두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고, 뉴욕 양키즈 역시 비싼 선수만 사 모으지만 언제나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 음반은 지휘자와 연주자의 앙상블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플레트뇨프는 1악장의 묵직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 급격하게 흐르는 2악장, 더없이 로맨틱한 3악장, 4악장의 변화가 잦은 흐름을 잘 따라가면서 매우 서정적인, 그러면서도 서사적인 구도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1악장의 묵직한 베이스와 알레그로 모데라토로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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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율이 흐릅니다. 2악장의 점진적인 조율 변화, 3악장의 멜로디 라인 구현, 4악장의 화려한 전개 역시 혼자 듣기엔 너무 아깝군요. 전체적으로 대단히 균형이 잘 맞고 놀라울 정도로 통제가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각 악장마다 서로 다른 흥분을 안겨주면서도 곡 전체는 통일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 속에 네 가지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진행되는 것이지요.

RNO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오케스트라답게 거칠고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련되고 여성적인 데 있습니다. 이것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플레트뇨프가 보이는 일관적인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RNO의 연주는 모르고 듣는다면 서방 어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주는 서방 오케스트라와는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서방 오케스트라들이 흉내낼 수 없는 특징이 있거든요. 바로 '러시아성'이지요. 곡 전체에는 마치 라흐마니노프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러시아만의 분위기가 넘쳐 흐릅니다. 더없이 로맨틱하고, 그러면서도 기름기를 배제한 담백함과 절제된 투박함, 그리고 웅혼함. RNO와 플레트뇨프의 가장 큰 공로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러시아 음악의 흐름'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기존의 소련 오케스트라들이 들려주던 날카롭고 거친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라흐마니노프에 접근한 앨범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플레트뇨프와 RNO는 데뷔 이후로 꽤 많은 분량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나 지휘자로서나 대단한 재능을 발휘한 플레트뇨프는 10년 정도 지휘를 하더니 점점 흥미를 잃었고, 급기야는 지휘자로서는 은퇴를 해버렸죠. 사실 RNO를 설립할 때도 자신의 위치를 그저 임시적인 자리로 설정해 놓았으니 그의 은퇴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는 일이긴 했습니다만, 지금 그의 지휘를 듣고 있자니 또다시 아쉬움이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