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S.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미아 정 :: 2007. 1. 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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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 관계로 음원을 삭제했습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입니다-뭐 이것 말고도 이것저것 벌려놓고 한꺼번에 읽긴 합니다-. 영국의 평범한 꼬마들이 마법의 힘으로 '나니아(Narnia)'라는 세계에 가서 겪은 일을 적어놓은 것이지요. 집에서 '판타지나 읽는다'며 핀잔도 듣고 압박이 심한데다 동화같은 책이라서(그런 주제에 1000페이지) 읽는 것 자체가 좀 고역입니다만, 그래도 제가 감탄하는 것은 나니아의 창조자이자 절대자인 '아슬란-추측하건대 투르크 계열의 지배자였던 클르츠(혹은 킬리지) 아르슬란의 이름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르슬란'이 사자라는 뜻이거든요-'이라는, 사자의 모습을 한 신이 나타났을 때의 심리 묘사입니다. 물론 동화에 가깝기도 하고 유치한 면도 있고 종교학을 전공한 씨니컬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기에 참 괴로운 면도 많지요마는, 기쁨에 가득찬 인간들의 심리묘사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주인공이라서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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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바흐가 쓴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역시 거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는 하나의 도전과제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연주는 대략 '자장가로 사용되었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작곡일화를 따르고 있고, 거기에 또 대개 로잘린 투렉의 해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레코딩은 많지만 사실 투렉의 연주에서 벗어나는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역시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잠이 든 적도 많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의 아리아는 유명하지만 중간의 변주 부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이유라고 넘겨짚어도 될까 모르겠군요.

미아 정은 대단히 명민한 피아니스트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녀가 하버드 의대 출신이라거나, 하버드 음대 교수라거나, 여러 콩쿨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평가가 아닙니다. 뭇 남성 연주자들의 힘이 넘치는 연주나, 몇몇 여성 연주자들의 부드러운 연주는 아니지만, 그녀의 피아니즘은 자신만의 색채로 열린 공간을 채우며 듣는 이의 마음에 가볍게 노크를 합니다.

성급하게 말하자면 미아 정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기존의 시각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습니다. 대개 조용조용하고 편안하게 들리는 일반적인 연주와는 달리, 미아 정의 연주는 발랄하고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그의 음색은 약간 성마른 기색이 있긴 합니다만 유려한 테크닉으로 건조한 음색을 커버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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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다'는 단어는 바흐의 음악에서는 그 긍정적인 의미만큼이나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 쉽지만 미아 정의 연주에만큼은 그 부정성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간의 평가가 그렇듯이 미아 정의 장점은 음표 하나하나에 대한 표현력보다는 곡 전체에 대한 커다란 해석력에 있기 때문에, 미아 정의 발랄함은 단순히 터치나 음표의 해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곡 전체의 해석에 대한 문제로 확대됩니다. 말이 상당히 꼬였지만, 정리해서 말하자면 미아 정은 충만한 기쁨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창작 일화에 대해서는 물론 안면을 위한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긴 합니다만, 바흐의 다른 곡들이 으레 그렇듯이 꼭 종교적인 표제가 붙어있지 않더라도 그 안에 그의 인생과 신에 대한 생각이 녹아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그렇기에 이 곡에도 분명 바흐의 인생관과 신관이 담겨 있고, 미아 정은 그것을 찾아내어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레코딩은 분명 한 쪽에서는 '너무 가볍다'거나 '너무 시끄럽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점이 연주의 가치를 깎아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아함 외에는 별다른 장점을 찾아볼 수 없는 요요마의 바흐 연주가 지니는 진짜 장점은 춤곡에서 나온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지닌 춤곡의 성격을 찾아낸 것이듯이, 미아 정의 연주가 지니는 장점은 곡에 숨겨져 있던 '빛'을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아 정은 악보 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바흐의 빛을, 마치 실타래를 풀어나가듯이 미려한 터치로 재현합니다. 빛이 풀려나는 템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그녀의 연주를 듣다보면 어두운 곳에 있다가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틈새로 빛을 따라나가는 듯한 느낌이죠. 굳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나니아 연대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바로 이런 느낌 때문입니다. 미아 정의 연주는 하얀 마녀 때문에 백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나니아가 아슬란의 귀환으로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따스하고, 빛나며, 기쁩니다.

전부터 얘기하는 것이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잘 의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도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믿음을 갖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군요. 당연히 저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비극이라면 비극이고, 아니라면 또 아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끔씩은 저도 기대고 싶을 때가 있는데, 미아 정의 연주에서 넘쳐나는 빛과 기쁨은 오늘 밤 제 머리맡을 지켜줄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