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 발레리 아파나시예프 :: 2010. 8. 6. 00:13





많은 경우에, 우리가 글렌 굴드의 연주에 본의 아니게 '광기'라는 이미지를 겹쳐 생각하게 되는 까닭은, 때때로 지나치게 난타하는 듯한 그의 속사포 같은 연주 스타일 때문입니다(굴드와 관련된 여러 책을 읽어보면 그가 자신이 매우 빠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이 보입니다). 꼭 굴드와 연관짓지 않더라도, 미칠 狂 자는 '광란의 질주' 같은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개는 '빠른 것'의 속성을 빌어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물고기 눈 속에 숨은 보석은 빛이 나지 않고, 숲 속에 숨겨둔 나무토막은 찾기 어려운 법입니다. 거장들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개봉할 때마다 욕을 들어먹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범이 있는 장르에서 그것을 뛰어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요.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이미 확립해놓은 광기를 뛰어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상 이후로 나온 문형파괴적 산문시들이 그저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처럼 말이죠.

아파나시예프의 연주가 지니는 특별함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역설(逆說)'의 강력함이죠. 벗겨진 머리의 한쪽을 길게 늘어뜨린 자켓 사진에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포스는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주 평범하게, 하지만 약간 묵직하게 시작하는 1주제부터 목관이 이를 받아 진행하는 발전부에 이르기까지, '약간 느리다'는 느낌 외에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빠르게 이어지는 짧은 찰현의 느낌이 굉장히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정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목가적인 2주제 이후 다시 나타나는 피아노의 1주제 부분부터, 가면 갈수록 느려지는 듯한, 그런데도 그 와중에 어딘가 단속적인 그의 터치에서 뭔가 다른 점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시작 부분의 생동감과는 다른, 생경한 느낌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서 공항에 내렸을 때 들려오는 갑작스런 외국어들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할 때의 느낌이랄까요. 듣는 사람이야 어쨌든, 아파나시예프는 느리적한데 뭔가 여유롭지만은 않은 희한한 템포와 분위기를 아주 고집스럽게 유지합니다.

오케스트라와 어긋날듯 어긋날듯 하는 아슬아슬한 균형은 카덴차에 이를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 동안 아파나시예프의 단속적인 두드림과, 매우 인상적인 팀파니의 피아노(p)가 지나가고, 대단히 안정적으로 1주제를 바탕에 깔아주는 현악기군이, 어울리지 않는 듯 묘한 어울림으로 곡을 전개합니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이 몇 분 동안 계속, 다른 곡들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베토벤에 허를 찔린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카덴차에서도 아파나시예프의 고집은 계속됩니다. 여전히 느릿느릿, -이미 거의 외우다시피 한 곡임에도-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분위기를 유지하며 자기만의 흐름을 만들어갑니다. 특히 카덴차에서 그가 구사하는 왼손은, 마치 땅이 울리는 것처럼 압도적인 울림을 새겨줍니다. 역시 느릿느릿한 가운데 지긋이 드러내는 피아노와 피아니시모의 떨림 또한 일품입니다.

그러나 이 연주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생경한 1주제도, 느릿느릿 움직이면서도 압도적인 카덴차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곡의 주인공은 바로 카덴차가 끝난 직후에 나오는 짤막한 코다입니다. 카덴차 마지막의 옅은 트릴을 타고 나오는 팀파니와 함께 시작되는 부드러운 하강선율과 그 이후의 변형된 1주제로 이루어져 있는 부분이죠. 1악장의 시작부터 카덴차까지 응축된 에너지를 단번에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보니,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연주자마다 상당히 판이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그만큼 1악장 마지막의 단 1분간이, 자신의 스타일이나 곡 해석을 압축해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파나시예프의 '1분간'의 해석은 판이한 정도를 넘어서, 우리에게 완벽하게 다른 곡을 선사합니다. 약 16~17분간 아껴뒀던 에너지를 격렬하거나 빠른 타건과 템포로 풀어내는 일반적인 연주와는 달리, 그는 오히려 얼어붙은 철을 더 차갑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전히 느린 전진과, 백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담아둔 팀파니, 그리고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아무 것도 없는 듯 시작하는 가슴 떨리는 피아니시모.

이 단 1분간으로, 저는 아파나시예프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역시나 감동적이고 가슴 떨리는 2악장이나, 조금은 비극적인 생동감이 넘치는 3악장도 좋지만, 기실 저는 그 단 1분간을 듣기 위해 이 곡을 듣는 것이나 다름 없거든요. 그래서 제게 아파나시예프의 연주가 다른 어떤 미칠듯 빠른 연주보다도 더 압도적인 감동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르고 거칠고 힘있는 연주보다, 오히려 꽁꽁 숨기고 숨겨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단 한 번, 찰나의 순간 동안만 숨겨왔던 것을 내비치는 그의 연주에서 오히려 잘 갈무리해둔 광기가 더 섬뜩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아파나시예프의 연주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아마도 '동중정(動中靜)'이 될 것입니다.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압축시킴으로써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역설적인 광기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의 연주가, 막 낭만파의 문을 열어제끼던 1800년 초의 베토벤 해석에 있어 가장 탁월한 해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년이 넘도록 지금도 습관적으로 1악장의 1주제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은, 바로 아파나시예프가 보여준 새로운 경지, 역설의 걸작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