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J. S. 바흐 건반 협주곡 - 머레이 페라이어 :: 2007. 2. 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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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바흐 건반협주곡 6번 1악장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들 합니다. 이 격언을 제 스스로에게 적용시킨다면, 저는 -얼굴은 범죄형이지만 마음은 비단결임에도 불구하고- 필경 마음까지 시커먼 범죄자가 되겠습니다만, 얼굴에 그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 혹은 스타일이 배어나온다는 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진짜 마음만은 비단결입니다, 믿어주세요). 우리가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의 얼굴에서 그의 고독과 어두움과 광기를 읽어내는 것처럼, 음악계에서도 연주자의 얼굴을 보면 어느 정도 연주 스타일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그렇게 외모에서 연주를 읽을 수 있는 연주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옆집 아저씨 같아지는 그의 외모는 굉장히 부드럽고 유순해보이지만, 눈매와 코, 입 등의 부분부분에 집중하면 또 은근히 꼬장꼬장한 영감님의 성격도 얼핏 보입니다. 아침에 조깅할 때 만나서 인사할 수 있는 아저씨-혹은 할아버지- 같은데, 의외로 까탈스럽고 입맛도 고급인 그럼 사람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뭐가 그래서라는 건지- 지금까지 들어 본 페라이어의 음반에서는 '날카로움'이나 '차가움' 같은 것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서 자주 느껴지곤 하는 이지적인 이미지도 페라이어와는 거리가 멀죠. 비르투오소들이 보여주는 대단한 힘과는 더더욱 거리가 멉니다.

 

이지적이지도 않고, 힘이 넘치지도 않는 페라이어의 장점을 정리하자면 상당히 목가적인 느낌입니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푹신푹신하죠. 마치 시골 농가 마굿간에 두껍게 깔아놓은 짚단처럼요. 그렇다고 해서 터치가 부정확한 것도 아니고, 음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짚어주면서 넘어가기 때문에 곡을 뭉개놓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에게서 '페라이어는 콘서트에서 미스터치가 장난 아니라더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일단 레코딩에서만큼은 꽤 정확한 운지를 자랑하죠.

 

이 앨범에서도 페라이어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곡을 연주할 때보다 터치가 훨씬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리 자체를 뾰족하게 내는 것도 아닌데, 오케스트라의 음량에 묻히지 않고 도드라지는 이유는 아마 -마이크를 가까이 대놓기도 했겠지만- 포르테 피아노의 음색을 연상시킬 정도로 가볍게 놓았다 떼는 그의 터치 때문일 겁니다. 터치가 가볍게 흐르다보니 곡 전체가 늘어지지 않고 활발하게 진행되죠. 지루하지가 않아요.

 

전체적인 음색은 페라이어의 장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단히 부드럽습니다. 곡이 흘러가면서 뒷쪽의 협주곡 7번쯤에 이르게 되면 빠른 속도를 따라가느라 음색이 좀 딱딱해지긴 합니다만, 앨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양털이불을 깔아놓은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하고 폭신폭신합니다. 아마 이렇게 편한 기분으로 음악을 듣는 것도 흔치는 않을 거예요.

 

이쯤 되면 '좀 이상하다'고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포르테 피아노처럼 가벼운데 따뜻한 건 좀 앞뒤가 맞지 않지요? 땅땅거리는 소리가 나는 포르테 피아노와 어느 정도 깊은 울림이 있어야 날 수 있는 따뜻한 소리는 아무리 봐도 그다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닙니다. 그런데 페라이어의 연주는 정말로 그 둘이 조합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르테 피아노에 라우드 페달을 달아서 누르'거나, '그랜드 피아노에서 쉬프트 페달을 누르고 연주하는 것 같은' 음색입니다. 사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하여간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고 푹신한, 신기한 느낌이지요. 저도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두 성질이 각각 따로 나타난다고만 생각했거든요.

 

페라이어의 진짜 장점은 바로 이처럼 상반된 성질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사실 협주곡 1번의 3악장 같은 경우에는 너무 톡톡 누르고 지나간다고 싶을 정도로 가볍게 건드립니다. 좀 더 부드럽게 레가토처럼 연주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각 음의 단속적으로 연결돼 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각 음은 그렇게 끊어져 버리는 것 같은데, 한 음 한 음을 짚는 터치에만 집중하지 않고 곡 전체를 듣다 보면 음과 음 사이에 잔향이 남아서 그들을 이어주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잔향이라기보다는 배음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정확하겠군요. 그래서 분명히 끊어서 연주하는 것 같은데, 다시 보면 분명히 연결이 되고 있는 거죠. 페라이어는 아마도 배음렬을 잘 이용해서 이 부분을 연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독주자 뿐이 아닙니다. 브람스 이전의 협주곡들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대립하고 대결하는 웅장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독주악기가 곡을 이끌고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반주의 역할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어찌 보면 간소한 구조였죠. 따라서 브람스 이전의 협주곡들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독주악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로 뒤를 받쳐 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네빌 매리너 경이 오랜 시간 동안 조련해 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SMF)는 이 조건을 아주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예쁘장한 배경을 깔아주는 것이야말로 ASMF의 특기인데-그래서 규모가 작은 곡에서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죠-, 페라이어의 지휘 아래에서도 역시나 좋은 연주를 들려 줍니다.

 

결과적으로 따뜻한 독주자와 따뜻한 오케스트라의 조합은 상당히 성공적인듯 싶습니다. 페라이어는 예의 그 신기한 음색으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딱 좋은 연주를 했고, ASMF도 나서지도 않고 너무 뒤처지지도 않는 딱 좋은 반주를 했죠. 예전부터 페라이어의 앨범이나 ASMF의 앨범은 대부분 호감이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앨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호연입니다. 페라이어는 최근 들어 지휘에도 손을 많이 대며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명예 기사 작위를 받은 그가 앞으로도 품격 높은 연주를 들려줄지 꽤 관심이 갑니다.